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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기사 레이어스/ 크레우미] Give a reason for life 4

보랏빛구름 2010. 9. 13. 13:57

어리다는 말의 어감은 이런 느낌을 준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해맑은.

 

그래서 더욱 맹목적인.

 

 

 

 

 

 

 

 

 

우미는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접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물어보면 될 테니까. 그러고 나자, 자신이 방금 전에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만약 이 생각이 그 둘의 대화와 관련이 있다면, 자신이 란티스를 조금 곤란하게 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아니, 숨기고 있다기보다…

그것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마음이 은연중 깔려 있었다. 그것은 흐릿하지만 확실한 이미지였다. 우미는 잠시 둘이 떠난 시간을 가늠하다 뒤로 돌아섰다.

 

이런 건, 후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지.

 

 

 

 

 

 

 

 

 

 

란티스는 히카루를 만났다. 히카루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해서, 란티스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어디로 가지?”

“크레프에게. 역시 물어봐야겠어.”

“…아마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다들 슬퍼하고 있는걸! 란티스도 슬퍼하고 있잖아! 도사를 보내고 싶지 않잖아…”

 

란티스는 침묵했다. 히카루가 란티스의 옷을 잡고 흔들었다. 흔들리는 건 히카루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리는건, 너무하잖아… 이제야 겨우… 이제야….”

 

또 울 것 처럼 그렁거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란티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크레프의 말을 들은 이후 모두가 슬픔에 차 있었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않는 히카루처럼 분노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이는 없었다. 프레세아는 냉정하고 대담한 듯이 행동했지만 실은 그녀도 울고 있을지 모르지. 조심스레 히카루를 안아 등을 두드려 주자,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아직 열 다섯에 지나지 않았다. 작은 어깨와 젖어가는 어깨를 느끼며, 란티스는 그녀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것밖에, 해 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크레프는 우미가 준 목걸이를 들고 고민을 시작했다. 이것을 받았으니, 사라지기 전에 보답을 해야 할 텐데 무엇을 선물해 주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크레프는 손뼉을 쳤다.

 

그래,

그녀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후도, 히카루도 가르쳐줄 것이다. 우미가 좋아하는 것을.

 

발걸음을 돌려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히카루나 우미나 후가 세피로에 오면 지내는 곳. 그 근처의 분수에서 자주 티파티를 하곤 하던데. 오늘도 그곳에 있을까. 크레프의 손에 있던 목걸이가 조금 흔들렸다. 파란 빛이 햇빛을 반사해 여러 색깔로 부서졌다. 크레프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우미가 그곳에 있을까?

다른 이들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손에 들린 목걸이의 아쿠아마린 장식이 차랑,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며 목걸이줄과 부딪쳤다.

위태롭고 날카로운 울림이었다.

 

 

 

 

 

 

 

 

 

우미는 후의 손을 잡아끌고 늘 가던 정원의 의자에 앉았다. 후는 우미가 이렇게 다급해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 궁금해하는 모양이었다. 언제나 가득 차 있는 찻주전자에서 홍차를 따라 후에게 쥐어주고 나서, 우미는 자신이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다.

 

“어째서, 크레프는 그렇게 어린 모습일까? 옛날의 아스코트처럼 말야.”

“어, 그러니까…그게 궁금했던 거니?”

“응. 궁금해!”

 

란티스랑 프레세아가 한 이야기도 있고 말야- 뒷말은 꿀꺽 삼킨 채로 우미는 후를 바라보았다. 후는 조금 곤란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세피로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걸…. 역시 프레세아나 란티스에게 물어보는 편이.”

“어, 왜? 왜 굳이,”

“그야, 페리오나 아스코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인걸. 아니면, 크레프에게 물어보는 건?”

 

우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아도 될 일 같기도… 그렇지만, 역시 뭔가 곤란했다.

 

어째서?

이렇게 뒤를 캐듯이 알아가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물어보면 그게 더 확실할 텐데.

 

잠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우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묘하게 복잡하다. 단순한 일인데, 이상하다. 자신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뭘까?

 

“그러게, 뭔가 껄끄럽네… 이게 뭘까?”

“그거야 우미만이 알겠지요.”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꼬면서 우미는 조금 우는 듯한 소리로 투덜거렸다. 후는 웃으면서 차를 마셨다. 그렇지만, 곧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크레프?”

“응?”

 

우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후의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재빨리 후의 시선을 쫒아 뒤로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

“아니… 아무것도 아니…?”

 

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확연히 굳어 있었다. 우미는 조금 당황했다. 후가 저런 표정을 짓는 일은 흔치 않았다. 크레프가 있었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쩐지…”

“응?”

 

“크레프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망설이며 후가 내놓은 중얼거림에 우미는 머리카락을 감고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내렸다. 상처 받았다고? 그가? 그러나 우리가 한 이야기는 크레프의 비방이 아니었다. 단순한, 질문. 그의 ‘성장’에 대한. 상처받을 만큼 대수로운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성장.

 

설마,

세피로인 모두가 공유하면서,

공공연히 묻어두는 비밀이 존재하는가?

 

그것도,

크레프와 많은 관련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