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
지금의 세계는, 다수의 의지가 세상을 지탱하는 시스템.
그렇다면, 다수의 의지가 절대적인 힘으로 구현된다.
그런데 어째서
‘기둥’도 아닌, 단 한 사람의,
‘과거’의 의지를 벗어나지 못할까?
후는 순간 굳어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우미를 바라보다 시선을 다시 크레프가 있던 곳으로 돌렸다. 그는 분명 대화를 엿듣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늘 그랬듯이 웃고 있다가-
표정이 굳어지며, 사라졌다.
어떤 대화였지?
-어째서, 크레프는 그렇게 어린 모습일까? 옛날의 아스코트처럼 말야.
- 우리는 세피로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걸…. 역시 프레세아나 란티스에게 물어보는 편이.
-그러게, 뭔가 껄끄럽네… 이게 뭘까?
대화의 키워드는, ‘어린 크레프의 모습’과 ‘세피로인’. 두 가지로 나뉜다. 그래, 결국 결론은 그것이다. 우리들은 ‘마법기사’, 결국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세피로는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상이 아니므로. 피로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특정 선 바깥으로 저지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묘한 배척감에 미미하게 얼굴을 찌뿌리던 후는 우미가 벌떡 일어나자 순간 하던 생각을 지우고 우미를 쳐다보았다.
“안되겠어!”
“우미…?”
“역시, 모두에게 물어보고 올래! 옛날에 한 말 가지고… 너무하잖아!”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후는 그런 그녀의 파랗고 긴 머리카락이 한들한들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방금 했던 생각에, 뭔가 기묘한 단서가 붙었다.
어린 크레프.
세피로.
의지.
옛날에, 한 말.
순간 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우미는, 우리가 모르는, 크레프에 대한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
“우미? 잠깐만 기다려!”
아스코트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히, 오늘 우미가 보자고 했는데 우미가 좋아하는 과일열매를 따다가 조금 늦어버렸다. 얼른 가야지. 약간 빨개진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우미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던 그는 잠시 눈에 들어온 인영에 시선을 주었다.
“크레프?”
멀리서 잠시 지나치면서 스친 인영이었기에, 아스코트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위화감은 뭐지? 엣날에 느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 생각해도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어, 그는 그냥 그 기억을 무심히 흘려버렸다.
한창 울고나서 지쳐 잠들어버린 히카루를 데려다주기 위해 란티스는 그녀를 안아들고 천천히 그녀들의 숙소로 향했다. 슬픔이라. 슬픔… 그녀의 이런 슬픔은, 과거 에메로드의 죽음을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그녀는 슬퍼하고 있다. 도사의 끝을.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른가. 우리들은 어째서 저렇게 울지 못하는가. 란티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어째서 울지 못하지?
-그렇지만! 다들 슬퍼하고 있는걸! 란티스도 슬퍼하고 있잖아! 도사를 보내고 싶지 않잖아…
보내고 싶지 않다. 당연하다. 왜냐하면…
- 그렇게 사라져버리는건, 너무하잖아… 이제야 겨우… 이제야….
왜냐하면…
잠깐.
방금 전, 프레세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려 본다.
“크레프는 여전히 그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가?”
“…그렇죠…. 그의 의지는, ‘기둥’없이도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을 만큼 강했는걸요. 역시, 크레프는… 그렇게 사라질 생각인거예요.”
“… 그런가… 그런 과거의 맹세에 얽매이는가…,”
“얽매인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이처럼… 그래요. 그는 단지 아이처럼 그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뿐이니까요.”
“그 육체는 그렇다면 그러한 정신의 산물인가?”
“그렇겠지요….”
그런 이야기를 하던 프레세아의 목소리에는 지울 수 없는 서글픔이 섞였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소리지르지도 않았다.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기묘할 만큼. 크레프의 소멸 원인을 정확히 짚어낸만큼, 그녀의 통찰력은 란티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통찰력이 닿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닿지 않는 껄끄러움이 존재한다. 아니, 그것은 마치, “열지 말아라.”라는 터부를 붙여놓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느낌이었다. 여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란티스의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잡힌 까닭이었다.
“크레프-! 크레프! 어디 있어요?”
“우미…?”
“아, 란티스! 혹시 크레프를 보았어요?”
“아니… 조금 조용히.”
잠든 히카루로 시선을 돌리자, 우미는 입에 손을 올렸다. 실례했다, 라는 짧은 행동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성 안으로 달려나갔다. 그 다급함에, 란티스는 그녀를 쫒아가려다 조용히 제지하는 손에 고개를 돌렸다. 후였다.
“후, 무슨 일인가.”
“우미는 우미의 일을 해야 해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도록 해요.”
“…?”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란티스에게, 후는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낮게 부탁했다.
“오늘 저녁에, 모두를 모아 주세요. 우미는 제가 만나면 오라고 설득하겠어요. 단, 도사는 오면 안 돼요.”
란티스의 눈이 약간 커졌다. 약간의 당혹을 섞어 후를 바라보자, 후는 여전히 진지하게 부탁했다. 그것은 권위적이지 않은 명령이라는 느낌을 줄 만큼,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크레프를 제외한, 모두를 모아 주세요. 긴히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요.”
이 모든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모두는 알고 있으면서 함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입을 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망설이다가는, 떠나가 버리니까.
그러면,
자신들의 푸른 친구는
깨닫지 못한 마음에 울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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