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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기사 레이어스/ 크레우미] Give a reason for life 3

보랏빛구름 2010. 6. 18. 15:04
 

의지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세계.

절대적인 파괴도, 절대적인 창조도 중화될 수 있는 세계.

 

그러나,

 

그것은 아직 어린 ‘그’ 에게는 저주였을런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 란티스와 페리오는 크레프의 일을 천천히 도와나갔다. 크레프도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돕는 와중에도, 란티스와 페리오의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크레프는 자주 미소지으며 그런 우울한 표정은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종용했으나, 그것은 그러한 달래기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 일을 돕는 것 또한, 크레프의 생각이다- 라고.

 

일을 돕는 것은 전체적으로 크레프에게 자유시간을 줄 수 있다. 또는 크레프의 몸을 쉬게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의 사멸은 육체적인 피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한 ‘의지’. 그 맹목적 의지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차라리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밀려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의지가 깨어나면, 크레프는.

 

사라진다.

 

그러나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크레프가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사라진다 해도. 개인의 존재와 상관없이 국가는 운영되어야 했다. 그것은 크레프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기둥을 너무나도 사랑한. ‘기둥’이라는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한 마디 하지 않은-.

 

후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최후의 기둥 같아요… 그런데, 우리들은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요. 스스로의 의지인걸요… 타인의 의지로 꺾을 수 있을 만큼의 것이 아니예요…

 

그녀는 히카루와 같이 울었다. 그건 옳지 않다고, 그렇게 외쳐 보아도 이미 결론지어진 미래였다.

 

 

 

“우미?”

 

크레프는 직무가 끝나면 성의 맨 꼭대기에 서서 세피로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이따금씩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고, 조용히 풀이나 나무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다들 알고 있는 크레프의 취미였다. 우미는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 아스코트를 찾고 있었는데, 아스코트가 성 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 성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크레프를 보게 되었다. 바람이 크레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잠시 넋을 놓게 하는 풍경이었다.

 

“크레프, 여기서 뭐해요?”

“세피로를 보고 있다.”

 

아름다운 곳이니까. 세피로는. 크레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너무나 꽉 차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놓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극상의 미소였다.

 

“정말로, 예쁘네요…”

“그렇지?”

 

도사는 가장자리로 조금 더 걸어가서는 우미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듯이 말을 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야… 나는 이곳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가득찰 것 같다.”

“행복해요?”

 

뜬금없는 물음이지만, 크레프는 성의있게 대답했다. 그 극상의 미소를 지으면서.

 

“그래.”

 

 

 

 

 

 

크레프와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우미는 아스코트에게 주려던 물건을 쥐었다. 아무에게나 주면 안 될테지만, 그래도.

 

“크레프, 이거 받아줄래요?”

“응?”

 

크레프의 손에 놓인 것은 예쁘게 세공된 아쿠아마린이 달린 작은 목걸이였다.

 

“어머니한테 이곳의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한테 주라고 했거든요. 크레프에게 줄게요.”

“고맙지만, 나보다는…”

 

크레프는 조금 망설이며 손에 쥔 목걸이를 우미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했지만, 우미는 극구 사양하며 그 긴 머리를 휘날리며 뒤로 돌아 크게 도약했다.

 

“우미! 나는-!”

“선물 남한테 주면 벌 받는 거 알죠, 크레프?!”

 

그 짧은 스커트와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사라지는 우미의 뒷모습을 보던 크레프는 잔뜩 당황해서 뒤를 쫒으려 했지만 무리였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에는, 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손에 쥔 목걸이를 어떻게 할 줄 몰라하며 크레프는 잔뜩 당황해 붉게 물든 얼굴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곤란했다.

 

 

 

 

 

 

 

 

 

 

크레프에게 목걸이를 주고 달려 나와, 혹시나 크레프가 쫒아올까 봐 (크레프는 쓸데없는 데에 마법을 쓰지 않으니 아마 쫒아오진 않을테지만) 잽싸게 발코니를 넘어 정원에 가볍게 착지한 우미는 휴우-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으려는데, 란티스와 프레세아가 보였다.

 

 

-역시, 크레프는…

-… 그런가…

-……. 아이처럼…

-그 육체는…

 

프레세아는 란티스와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보고, 흠칫 놀란 프레세아가 뒤돌아섰다. 란티스가 입을 열었다.

 

“우미… 혹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었나?”

“아니오, 전혀!”

 

손을 흔들면서 부인하자, 란티스는 그런가. 라는 짧은 긍정과 함께, 프레세아가 사라졌던 길로 돌아섰다. 우미는 또한 크레프의 걱정인가 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방금 전에 들은 단어가 떠올랐다.

 

아이…

그러고보니.

 

 

“어째서, 크레프는 아이지? 왜 성장하지 않지…?”

 

그 육체에 대한,

조그마한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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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거 보고계신 분 없겠지 싶어, 조금 두근두근해지네요 ;ㅁ;

3편이 너무 늦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