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와 태을의 이야기입니다. 태을과 천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약간의 BL경향이 존재합니다. 안경끼고 보시면요.
제가 쓰고 싶었던 건 모성애와 부성애입니다. 결국 은씨의 모성애와, 태을의 부성애가 나타를 만들었다는. 실은 은씨의 모성애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태을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나타에게 모두 부여한 걸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런 것과 관련해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태을은 문득 자신의 손에 들린 무엇인가를 바라보았다. 건곤권이었다. 7개의 수퍼 보패는 더 이상 사용될 일이 없도록 봉인되었고, 그 때문에 나타는 새로이 태을의 손을 거쳐야 했다. 몸에 이식된 금교전을 떼어내고, 새로이 몸을 완성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사흘 밤낮을 새서 추욱 늘어져 있는데, 눈을 뜨자마자 나타는 태을에게 자신의 보패를 다시 만들라고 ‘요구’한 것이다. 말이 요구지, 명령에 가까웠다. 건곤권을 받자마자 태을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금교전 해체 작업이 너무 길고 피곤했기에 쉬고 싶은데, 저 녀석이 그렇게 해 줄 거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따가.’라는 말만 내뱉듯이 말하곤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보패가 없으니 공격은 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 짜증을 내면서 제 방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건곤권과 화첨쟁이 전부 고장나 맡긴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나라도 있으면 공격당했을 테니까.
…
그리고 눈을 감고 바로 다시 떴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익숙한 방의 천장이었다. 문살에 발라놓은 창호지를 은은히 통과한 빛이 눈을 간지럽혔다. 창호지에 같이 발라놓은 국화향도 잔잔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태을의 현재 상태를 안정시키지는 못했다. …어라? 내가 언제 잠들었었나? 마치 기억의 중간 부분이 끊어져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에 태을이 눈을 비볐다.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태을진인님!”
들어온 건 무길이었다. 눈을 깜빡이고 있자 물을 갖다준다. 물을 받고서야 태을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네?”
“나 분명, …금교전을 해체하고, 그리고…”
“바로 쓰러지셨다죠! 나타가 얼마나 놀랐는지 혼천능으로 물을 전부 양전씨에게 쏟아부어버리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어요!”
“…나타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나한테 쏟아부을 줄 알았는데.
“네. 과로라고 쉬게 해 드려야 한다고 운중자님이 말씀하시니까, 자기 방으로 돌아가긴 했는데 영 미안했던가 봐요.”
“오늘 무슨 날인가?”
툭 하고 말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진심으로 오늘이 무슨 날인가 했다. 물론 나타가 그런 날을 셀 만큼 세심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고서야. 태을은 무길의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타는 본디, 상당한 외곬수였다.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과, 어머니를 잃은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동정’이 나타가 가진 대다수의 감정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결국 감정을 갖지 않은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자비한 편이었다. 예전에 홍주에 갇힌 태공망 일행을 아예 무시한 것도 그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쉬세요, 라고 말하고 나간 무길을 잊어버리고 태을은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타는 자신이 감정을 갖게 된 대상 이외의 것들은, 강하고 약하고로 구분하여 싸우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의 행동을 택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패턴이고, 이정의 경우에도 부성애라기보단 그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은씨에게선 확실히 모성애를 받았겠지.
… 그리고, 태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타는 누구에게서 부성애를 받았지? 나타의 행동 자체는 감정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제법 완성되어 있는 편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댄다거나 의지한다거나 하기보단 오히려 의지되는 편에 가까웠다. (천상에게는 적어도 그랬다.) 그렇다면 - 파더콤플렉스가 있어야 할 나타의 성격이 모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최소한의 ‘부성애’를 누군가에게서 충족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구지? 그게 누구지?
태을은 고민해보았지만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되어주었겠지. 어쩌면 태공망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모르는 인물일지도 모르니 이 이상 생각하는 건 쓸데없었다. 거기다 태을에게는 한숨 더 잔 뒤에 일어나서 할 일이 잔뜩 쌓여있었다. 내일은 나타의 건곤권을 수리해주자- 라고 생각하며, 태을은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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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은 나타와 태을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다. 태을은 한껏 고양된 얼굴로, 건곤권의 수리를 마치고 나타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타는 손에 건곤권을 끼우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태을의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천상이 나서려고 했지만, 그전에 태을이 설명을 멈추고는 나타의 표정을 보곤 웃었다. 나타는 얼굴을 찌뿌렸지만, 화내지 않았다. 천상은 나타가 화를 내면 바로 건곤권을 발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건곤권을 날리지 않는 것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건곤권을 다 장착한 후에 나타는 고개를 으쓱해 보였다. 태을은 그 미소 뒤엔 말이 없었다. 대신 나타의 손을 보고, 전체적으로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과 함께 나타가 움직였고, 그대로 그를 떠나 천상에게로 왔다. 천상은 웃으면서 나타의 등에 탔다.
“나타 형, 역시 형은 태을 님을 좋아하는 거지?”
“…좋아해?”
아직 ‘좋아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천상은, 별 생각없이 말을 이었다. 물론 나타 또한 알지 못했지만, 그 단어를 상당히 거북히 여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타의 얼굴이 찡그려졌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남을 많이 생각하면 많이 걱정해주게 된대. 형은 태을 님 아플 때도 많이 걱정했고, 아까도 걱정했잖아.”
“…”
나타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 기억의 한자락에서, 늘 있었던 어깨의 구룡신화토가 없던 태을의 모습이 흐리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이전에, 갑자기 늘어져버린 그의 모습 또한 떠올랐다. 나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시야가 뚜렷하다.
“그러니까 형은 태을 님을 많이 좋아하는 거야!”
천상이 웃었다. 천상이 웃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나타도 작게 웃었다. 어, 형 웃었어! 라며 더 시끌벅적해진 천상을 보며, 나타는 내일도 보게 될 익숙한 얼굴을 떠올렸다.
앞에서 기절할 수 있는, 유일한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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