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화일미 보고 싱나게 썼습니다.
BL을 모르시는 분은 보지 마세요.
오글거립니다.
플롯 말아먹은 지 좀 되었습니다.
엔세이는 문득 걸음을 멈추어섰다. 광주까지 제법 먼 걸음이었다. 하얗게 입김이 뿜어나왔다. 뭐 따뜻한 거나 먹을까 하지만, 슬슬 여비도 떨어져가는 참이라, 엔세이는 조금 곤란해졌다. 자신이야 딱히 길바닥에서 자든 나무 밑에서 자든 관계없지만, 카이유는 그렇게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또 카이유에게 먹이는 요리값이 생각 이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요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전국요리투어를 계획했지만, 막상 돈이 문제였다. 양산박이 몰락하고 암흑요리계가 소멸한 이상 돈을 딱히 구할 곳이 있을 리도 만무했고, 엔세이에게 따로 수입이 있지도 않았다. 어쩔수 없이, 이번에는 길가에서 좌판을 벌여야 하나. 자신의 한쪽 팔 옷자락을 꽉 잡은 손이 묵직했다.
"오늘은 뭐 먹고싶어?"
"아무거나."
아무거나라니, 그거 제일 힘든 뜻이라고. 맛있는 거... 맛있는 거.... 생각은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눈앞에 보이는 요릿집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양천주가. 굉장히 유명하지 않고서야, 엔세이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으면, 저기에서 카이유를 먹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안심의 한숨이 흘러내렸다.
"그럼 양천주가로 가자."
다행히 점심시간이 어중간히 지난 시점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식당 안이 따뜻했기에, 몸이 풀어지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엔세이는 점원에게 맛있는 오늘의 추천요리로 2인분을 달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하고는 사라졌다. 카이유는 자리에 앉자마자 느릿하게 몸을 테이블 위로 숙여 엎드리고 있었다. 피곤한 듯, 자려는 포즈였다. 이상하게도 요즘 카이유가 졸려 하는 날이 많아졌다. 여독이 쌓인 것 같아 어디서든 쉬면 좋겠지만.
".... 여비가 충분치 않으니 고민이지....."
엔세이는 왠지 피곤해졌다. 사실 카이유를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매 끼 음식점을 찾고 묵을 곳을 찾고, 그 외에도 여비를 버는 등의 일을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엔세이 자신이 요리에 매우 자신이 있어서 어디에서 노점을 하든 잘 팔린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번에도 노점 당첨이다.
"이번엔 뭘로 해볼까...."
국수는 전에 했고, 이번엔 돈도 충분치 않으니 밀가루로 적당히 할 수 있는, 만두를 쪄야겠다. 슈마이가 괜찮을까? 아니면 교자가 좋을까? 고민을 하던 사이 요리가 나왔다. 카이유가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고, 그리고,
점원이 접시를 떨어뜨렸다.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순간 엔세이의 등에 오한이 달렸다. 점원은 뭔가를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공포의 시선으로 카이유를 바라보더니, 곧장 주방으로 달려간다. 아뿔싸, 카이유를 아는 녀석이었나?! 엔세이가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일이라도 났다간 무엇보다, 카이유의 심리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카이유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
- 딱, 눈이 마주쳤다.
양천주가의 부주방장, 초유. 이런,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과 만나버렸다. 어쩌지, 일단 도망가야 하나? 아니 피하기엔 이미 길이 막혔다. 뒤따라 우르르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유마오신, 강철봉 쉐르에.... 레온까지. 아하하하.... 엔세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큰 실례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여차하면 내빼야지 싶은 마음으로 카이유의 손을 꽉 잡고 있으려니, 초유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왔다. 그 패기에 엉겁결에 엔세이가 같이 고개를 숙였다. 초유는 몸을 굽혀서 깨진 접시그릇을 줍고 있었다.
"점원이 어리석어 바보같은 실수를 했군요. 대신 이번 요리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아..."
슬그머니 유마오신 쪽을 보았다. 그는 조금 놀란듯 카이유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다가, 초유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는 꾸벅 몸을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레온도 꾸벅 몸을 숙이고, 쉐르는 자리를 피한다. 어라. 어라. 어라. 지금 이 상황을 모르겠다.
"멍청한 녀석! 손님한테 무슨 짓이냐!"
그리고 그릇을 깬 점원은 엔세이 앞에서 초유에게 한방 얻어맞았다.
그나저나 정말 굉장한 양반이네. 엔세이는 중얼거렸다. 보통 암흑요리계를 아는 자들 중, 자신들을 아는 자는 많지 않았지만, 아는 이들 중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저번에는 카이유를 암살하려는 자객이 있어서 며칠간 밤 꼴딱 샌 적도 있었다. 그에 반해, 초유의 행동은 굉장히 신선했다. 당연히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는 분위기. 양천주가가 괜히 이름높은 건 아니었구만. 일단 돈 굳었다, 만세. 카이유는 한창의 소동이 끝나자마자, 멀뚱하니 서 있다가, 엔세이가 슬금슬금 달래자 다시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보니 카이유한테 책도 사 줘야 할텐데. 카이유는 기억을 잃은 이후로 옛날처럼 책을 자주 찾게 되었다. 요전번에 장자를 사줬더니 열흘만에 다 읽어치워서, 그 속도에 놀란 적이 있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천재성이 드러나는구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감탄했었다.....
생각은 중간에 끊어졌다. 요리가 나와서였다. 자신은 분명 2인분밖에 시키지 않았건만, 육수로 맛을 낸 국수와, 화려한 슈마이와 향이 좋은 탕수육과 가벼운 반주까지 제공되었다. 생각 외의 환대에 엔세이는 카이유를 바라보았다. 이미 젓가락을 드는 카이유의 눈이 반짝였다. 엔세이는 그런 카이유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젓가락을 같이 들었다. 확실히 특급주사 둘의 실력은 화려했다. 표현하자면 용이 날고 신선이 피리를 불고 선녀가 하늘거리는 날개옷을 붙잡고 무지개가 둥실 뜨는 느낌일까. 쓸데없이 엄청난 비유가 들어간 거 같지만 그랬다. 그렇지만 아까워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카이유가 저렇게 즐겁게 식사하는 것도 오랜만이니, 구경이나 하고 있을까.
턱을 괴고 앉아서 다시 멍하니 생각해 본다. 이제 어떻게 할까... 카이유가 피곤해하는 거 같으니,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거 같은데 적당히 머무를 곳이 없으려나. 다 먹고나면 점원한테 싸게 묵을 곳이 없느냐고 물어나 봐야겠다. 생각이 끝나고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한다. 국이 약간 식었지만, 뜨거울 때랑 다를 뿐이지 맛있었다. 술도 따끈하니 적당히 데워져 있어서 찬 몸을 덥히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술을 마시자 엔세이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어느새 카이유는 그릇을 다 비워놓았다. 뭐 이정도면 괜찮겠지. 뜨거운 차를 두 잔 받아다 카이유에게 갖다주고는, 지나가는 점원을 붙잡아 물어볼 생각으로 차를 훌훌 불어 마셨다. 뜨거워서 맛도 잘 느껴지질 않았다. 카이유는 국수국물을 불어 먹고 있었다. 차를 몇 모금쯤 마셨을 때, 점원이 보였다.
"어, 저기-"
잡을 생각으로 손을 뻗었는데, 순간 앞이 흐려졌다. 어?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약간 앞으로 내민 몸이 기울어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쨍그랑, 하고 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차에... 마시지 마.... 카이유가 차 못 마시게 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의식이 사라졌다.
엔세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낯선 천장 아래 이불 속이었다. 흐린 정신이 서서히 맑아지자,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카이유!?"
"엔세이."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에 엔세이가 옆을 돌아보았다. 카이유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카이유, 괜찮아? 차 안 마셨지? 카이유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서, 마시지 않았어. 카이유의 말에 엔세이는 느리게 안심했다. 잘 했어.
그리고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낯선 곳은 확실했다. 카이유, 여기가 어딘지 알아? 양천주가.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보니, 양천주가에서 밥 먹고 차 마시다 쓰러졌지. 차에 약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피곤해서 몸이 말을 안 듣더니, 이런데서 일이 나는구만.... 엔세이가 뒷머리를 벅벅 긁고 있자니, 누군가 들어왔다.
"아, 눈 떴나?"
"... 예, 그런데...... 누구십니까?"
"라우라고 하는데, 이런 노인네를 알아보려나?"
라우, 라우.... 아, 그...! 엔세이는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중 하나였지. 몸을 일으켜서 인사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어지럼증이 올라와 그대로 베개에 몸을 푹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진 말게. 독이 강했어."
"어떻게..."
"아마 광주요리계에서 보낸 사람들일걸세. 암흑요리계를 결코 납득할 수 없을테니."
".... 뭐 그건.... 이해합니다만.... 도와주면... 이곳도,"
어지러워서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엔세이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독기를 느꼈다. 그는 천성이 방랑자였고, 천성적인 천재성으로 오호성이 되었기 때문에 딱히 엄청난 수련과정을 겪진 않았다.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암흑요리계 인사들보다 독에 약했다. 그의 미각과 청각, 후각이 남들보다 뛰어나 독을 잘 가려낸다는 것도 특별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피로에 마비된 오감은 예전의 칼날같은 예리함을 잃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메스꺼움에 엔세이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건 우리 일이니, 걱정말고 쉬게."
"........ 카이유, 를, 부...탁,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엔세이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엔세이가 잠들고 나서, 카이유는 옆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라우 대사 또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약 자정쯤 지났을 때, 라우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카이유, 지금 자네는 연극을 하는 겐가?"
"그럴 리가, 영감."
"그런데 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거지."
"내가 굳이 말해줄 필요를 모르겠는데."
"점심 때의 자네는 자네가 아니었네만."
"....그건 엔세이가 금단의 술(術)을 써서 생긴 인격일 뿐이지."
카이유가 고개를 들어 라우를 노려보았다. 낮에 본, 약간은 멍했던 눈동자와는 달리 살기와 짙은 분노가 묻어나 있었다.
"굳이 이야기해 주는 건, 엔세이를 살린 것에 대한 고마움인가?"
".......... 알아서 생각해."
카이유가 몸을 일으켰다. 라우는 팔을 들어 그의 행동을 막았다.
"범인을 잡으려고 해봤자 늦었어. 이미 도망갔네."
"그래봤자 광주련 놈들 중 한놈이겠지."
"전부 죽일 생각인가!"
"........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카이유가 라우의 팔을 뿌리쳤다. 그렇지만 라우는 다시 팔을 들었다.
"엔세이는 너를 알고 있어. 이중인격인 것까지도."
"알 리가 없어."
"그러니 나에게 너를 부탁했겠지."
"백치인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아니, 지금의 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다."
"그걸 어떻게 영감이 안다는거지."
"저걸 봐."
라우 대사의 손끝에는 엔세이가 있었다. 카이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가 독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나."
"피곤해서."
"왜 피곤했다고 생각하나."
"잠을 제대로 못 잤을 테니까."
"왜 잠을 제대로 못 잤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나?"
"-"
순간, 카이유의 몸이 멈추었다. 카이유의 또 다른 인격체는 일찍 잠든다. 그 이후 엔세이가 쉴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고 있었으니까.
'카이유'가, 깨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나 또 암흑요리계와 관련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저녁마다 전전긍긍했겠지. 저 멍청한 녀석은.
"-그래서. 지금 그 놈을 놔주자는 건가."
"이미 엔세이가 용서했네, 뭘 바라는가."
"복수를."
"그만둬. 그건 당사자인 엔세이가 바라지 않아."
"웃기지 마. 영감이 그걸 어떻게 안다는거지."
"......... 카이유."
라우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깨어나서 물은 건, '누가 독을 탔나'가 아니라, '자네는 차를 마시지 않았나' 였네."
"...."
"그리고 다음이 자네를 부탁합니다였고."
"...."
"엔세이 말을 들어. 자네도 좀 쉬고."
"멍청한 영감이..."
카이유는 짜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지만, 이전처럼 라우를 밀치지는 않았다. 대신,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쉴 방은 어디냐."
다음날, 엔세이가 눈을 떴을 때 카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유마오신이, 죽그릇을 들고 있다가 기뻐하며 그를 일으켰다. 일어나셨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엔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그릇을 받았다. 그리곤 카이유의 행방부터 물었다. 아, 카이유씨는 옆방에서 주무세요. 아침은 아직 안 먹은거야? 네, 아직 안 일어나셨대요. 그래........ 엔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그릇을 후딱 비웠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광주련에서 언제 또 자객을 보내올 지 알 수 없었기에, 빨리 이곳을 피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지만 죽을 먹고 나서도 몸에 힘이 들어오지 않아서, 도통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럼 쉬세요. 카이유씨 일어나면 말씀드릴게요."
으으.......... 엔세이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빨리 낫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그리고 눈 감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카이유가 들어왔다. 카이유는 천천히 엔세이의 이마에 손을 올려서 체온을 확인해보고, 숨이 고른지 확인한 후에 뒤돌아섰다.
"... 카이유...?"
"엔세이."
"아... 잘 잤어?"
"좀 더 자."
"응... 너도 아침 먹고... 돈은 주머니에 있으니까-"
"죽 끓여줄게."
"....... 네가?"
"응."
엔세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부탁할게."
"쉬어."
엔세이는 오랜만에,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양천주가의, 어느 특별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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