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체온은 35℃, 언제나 조금 차갑고 불안하다.
- 백상아리라는 상어가 있대. 왜 인간들을 먹고 다니는 상어 말야. 나도 수업 시간에 들은 거라 잘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원래 수업시간엔 잘 집중이 안 되니까 오히려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더 잘 생각나네. 백상아리는 인간이 키울 수 없대. 1년에 2,000KM를 다닌다고 하니까, 너무 활동량이 넓어서 인간이 만든 수조 따위엔 적응할 수 없었던 거지.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 ..... 몰라.
- 그래... 너를 보면 꼭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절대 붙잡히지 않지. 물론 실치 같은 것들도 있어. 그물에 걸리자마자 죽어버리는 나약한 아이들.... 하지만 너는 달라. 너는 그물 따위 찢어버릴 위인이니까 말야.
- 바라는 게 뭐냐.
- 바라는 거 없는데. 하핫, 바보들이랑 지낸다고 바보균 옮으면 안 되지. 이상하네. 난 네 말버릇이 옮았나봐. 저 말은 네가 자주 쓰던 건데.
- 빨리 죽여.
-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어. 너는 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창조물이지. 하지만 너는 백상아리고, 내 세상은 너무 좁아........ 언젠가는 내가 너의 시체를 박제해서 걸어놓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평생 내 손안에서 살아.
세상이 암전하지만 그 목소리만은 끊임없이 귀에 달라붙는다. 평생 내 손안에서 살아. 그 말이 지독히 싫지만 도망칠 방법이 없다. 텅 비어버린 왼쪽 눈가가 지독하게 시려왔다. 비각이 얼굴을 찌뿌리며 오른쪽 눈을 떴다. 무심결에 감정을 열어버린 건지, 류거흘이 걱정스레 저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피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어둠은 또 다시 저를 잡아먹는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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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는 한창 투영에 열을 올렸다. 비각이 설명하고 직접 방법도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투영은 까다로운 문제였다. 처음에는 손 끝이나 손톱을 강화하는 쪽으로 투영했었고,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총기류 등 섬세하게 구동할 수 있는 복잡한 것도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아저씨'가 싫어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되도록 말도 걸지 말"라고 했으나, 비각의 조언은 꽤나 도움이 되었기에 푸름이는 비각에게 이것저것 자주 묻고 자잘한 조언을 부탁하곤 했다. 물론 처음에는 비각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키큰 아저씨에게도 물어보았으나, 아저씨는 말을 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거나 혹은 손을 휘휘 흔들거나 하는 행동이 끝이었다. 결국 자연스레 푸름이가 의지하는 쪽은 비각이 되었다.
비각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왕왕 있었다. 비각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류거흘은 푸름이 옆을 지켰지만, 푸름이는 가끔 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비각이 사라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비각은 ‘소심한 거냐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거냐’ 라는 말로 푸름의 성격을 한 방에 파악해 버리고는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비각은 한쪽 팔이 없었다. 가릴 생각인지 팔이 없는 부분에만 코트를 덧입는 특이한 모양새였고, 온몸에 하네스를 하고 있었다. 반쪽만 가리는 코트나 붉고 검은 머리카락이야 그렇다 하지만, 특이한 모양새의 하네스는 푸름이의 눈에 특이하게 비치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입을 뗐다 닫았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각오를 다졌는지 어느 날엔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어, 지내기 안 불편하세요? 그.... 줄 같은 그거요.....”
“신경쓰지 마.”
“네, 네, 네!!!”
푸름이가 몸을 굽신거리더니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소심한 아이의 성격상 왜 그런 질문을 했지, 이러며 후회할 게 뻔했지만, 비각은 굳이 친절히 말로 괜찮다고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천천히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 애한텐 좀 친절하게 대해줘도 되지 않아?
“충분히 친절하게 하고 있어.”
네 입장에서야 친절이겠지만.
웃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왼쪽 눈이 울리는 것 같았다. 비각이 몸을 일으켰다. 인(印)이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빌어먹을 녀석이 또 부르는 모양이었다. 발걸음이 절로 움직인다. 마치 실에 걸린 인형마냥 움직이는 몸을 바라보면서, 비각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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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일렁인다. ‘왕’은 그 공간 속에서 웃었다. 대지에 가득 펼쳐진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걷어내듯 몸을 일으키자, 옆에 있던 용마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자윤, 또 ‘그’를 부르는 겁니까? 요즘 부르는 시간이 부쩍 늘었네요.”
“뭐 어때. 부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거랑 상관없이, 일은 꾸준히 하고 있어.”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닌 걸 알잖습니까. 전 그가 싫어요.”
“그러니 말해 주는 거야.”
안 그랬으면 저번처럼 또 만나게 될 거고, 네 투덜거림은 내가 다 감당해야 하니까. 고타야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자윤은 천천히 다시 누워 손끝을 바닥에 툭툭 두드렸다.
손 안에 넣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주 간절히.
소년의 물음이 귓가에 맴돈다. ‘안 불편하세요?’ 불편하지 않을 리가 있나. 아니, ‘불편’ 따위로 표현할 수 없다. 비각의 전신을 묶은 하네스는, 비각의 몸을 ‘컨트롤’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비각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제 눈에 보이는 ‘복종’의 증거란 얼마나 증오스러울까. 그 분노를 상상하면 늘 기분이 짜릿해진다.
드디어 손에 들어왔지만 결코 끝까지 가질 수 없음을 안다. 지금도 너는 네 목을 베려 하고 있지 않나.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순간마다, 너는 언제나 네 목 끝에 칼날을 가져다댄다.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긴 하지만.
이제 너를, 완벽히 가질 수 있어.
이젠 내 것이니까.
조금 차갑고 불안한 너의 체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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