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 사실 말야. 나 차차웅이래. 사람이 아니라는데.”
“뭐라고? 차차차?”
“아, 영감 벌써 귀 먹었어? 차차웅이야.”
“아 그래서, 그놈들이 너 잡으러 온다냐?”
“아니, 난 그런 건 영 둔해서… 그냥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스테이크에 칼질해서 양념에 절여 놓으라는 건 다 해 놨냐?”
“그건 시킨 대로 다 해 놨다고.”
#1.
손에 들린 접시가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고작 대여섯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년과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진 접시는 어색하게 한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소년이 접시를 눈앞의 키작은 남자에게 내밀며 중얼거렸다.
“됐어?”
“이놈이, 접시 깨지 말라고 했잖냐. 손은 괜찮냐?”
“몰라, 접시가 너무 약한걸 어쩌라고? …이런 걸론 안 다쳐.”
남자는 소년의 손에서 반 갈라진 접시를 받아 옆에 치워버리곤 소년의 손을 살폈다. 소년의 손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깨끗했다. 남들이 봤다면 비명이라도 지를 일이었겠지만, 남자는 생각보다 무심한 편이었다.
“아무튼 그런 짓은 하지 마. 꼴을 보니 접시 나르게도 못 시키고, 청소는 좀 하겠냐?”
“왜 그런 걸 물어? 도망은 안 가?”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러면 못 쓴다. 내가 왜 도망을 가?”
“거야…”
댁같은 인간 도망가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 그렇지, 라는 말을 삼킨 채, 소년은 시선을 내려 갈라진 접시를 바라보았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힘, 튼튼한 몸, 빠르게 회복되는 상처. 괴물 같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들어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길거리의 낯선 이들에게서도, 처음 자신을 받아들여 줬던 고아원에서도. 처음에는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라고 저를 달랬던 신부도 최후에는 공포스런 표정으로 제게 돌을 던졌었다. “주여 저 괴물을 벌하소서!”
뭐 훔쳐먹을 거리나 있을까 싶어 밤늦은 시간 문이 잠긴 가게에 몰래 들어오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주인이 아직도 가지 않을 줄은 몰랐었다. 하지만 주인인 듯한 남자가 저를 보고 건넨 말은 “요리를 배우고 싶나?” 였고, 멀뚱히 서 있는 저를 보고 다시 내뱉은 말은 “밥은 먹고 다니냐?” 였다. 제게 밥을 먹인 후, 남자는 말했다. 갈 데 없으면 여기서 살라고. 남자의 말에 소년이 내뱉었다. 나 괴물이라는데, 보여줄까?
소년이 접시를 들었다. 남자가 말했다.
“떨어뜨려서 깨뜨리지나 마라, 욘석아.”
“할방구 같은 소리하네, 아저씨.”
#2.
어디서 자신 같은 존재가 나타났는지 모른다. ‘차차웅’이라고 불리는 존재라고, 너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고 알음알음 얻어듣기는 했다. 그 이외의 것은 이해도 되지 않았고, 딱히 내 알 바 아닌 것 같아 부러 무시했다. 차차웅이라고 해도 무시무시한 기운의 남자가 와서 제게 탈 하나를 건네주고 간 것을 빼곤 별다른 일도 없었다. 소년은 남자에게 입을 다물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많이 알아봤자 남자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의 생각보다 남자는 본격적이었다. 소년을 붙든 날, 남자는 소년에게 신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소년이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입을 다물더니, 곧 제 어깨를 툭툭 털 듯이 두드려주었다. 그러고 며칠 뒤에는 남자가 저를 사람 많은 곳으로 데려가고는 뭔가 한참 다른 사람과 실랑이를 주고받더니, 내게 말했다. “사람이면 이름이 있어야지.” 그렇게, 내 이름은 초이가 되었다. 그게 사람들 말론 ‘호적에 이름이 실린다’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접시를 깨지 않고 옮긴다던가, 연필을 부서뜨리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섬세한 힘 컨트롤을 요구했다. 어느 날엔가는 불쑥 짜증이 나서 연필을 벽에 꽂았다가, 그 모습을 본 남자에게 크게 혼이 나기도 했다. 이유는, 연필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에 부딪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 따위로 전혀 상처입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혼을 내는 남자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초이는 말하기를 그만뒀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초이는 남자와 함께 뜯지 않고 운동화 신발끈을 매는 법을 연습하다 그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을 했다. 남자는 초이가 받아온 교과서를 보곤 밤마다 초이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쳤다. 초이는 까먹은 수학 숙제를 쉬는 시간에 급히 베끼다 걸려서 수학 시간 내내 의자를 들고 서 있었고, 미술 시간에는 그리란 사과는 안 그리고 딴짓하다 선생한테 걸리기도 한 것 외엔 별탈없이 학교를 다녔다. 남자는 초이가 수학 나눗셈을 처음 배울 때와 교복을 처음 입기 시작할 때 식당을 옮겼다. 첫 번은 운영 사정이 어려워서였고 두 번째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겠다며 윽박질러서였다. 초이는 남자가 가게를 옮길 때마다 묵묵히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초이와 만난 첫날을 생일이라 우겨대며 그 날마다 화려한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초이는 딱히 친구를 불러온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생일상에 올라온 음식을 남기지도 않았다.
#3
“이것 봐. 신기하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접시를 반으로 쪼개더니 이제는 허리춤에 있는 탈 같은 걸 저멀리 던져대는 걸 보니 이 녀석은 역시 요리사보단 다른 쪽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가 맨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렇게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며 탈을 날려보냈는데, 어느 순간 또 허리춤에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옛날에 어… 잭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이걸 줬는데. 던져도 부서져도 다시 이렇게 돌아온다?”
“것 참 신기하다. 써커쓰라는 것이 꼭 그렇던데.”
“영감, 안 이상해?”
“난 그것보다 니 키가 더 이상하다 이놈아. 언제 그렇게 먹고 컸대냐.”
“영감이 잘 먹여서 그렇지 뭐.”
처음엔 내려다보면 정수리가 훤하던 꼬맹이는 이제 올려다봐도 턱밖에 안 보일 만큼 커 버렸다. 요리도 어느만치 할 수 있도록 키워 놓았으니 이제 여한이 없… 까지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초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몸을 숙였다.
“왜 그래, 영감?”
“내가 이래서 편히 눈이나 감을지 모르겠다.”
“왜 또 죽을 걱정이야? 왜?”
“…그 녀석… 백정!!! 백정!!!! 그놈을 얼른 다시 잡아와!!!! 그놈이 요리사가 되기 전까지는 난 눈도 감지 못할거다!!! 눈만 감으면 그놈의 완벽한 칼놀림이 떠올라서 잠도 안 오는구나!!!!!”
“백정이 도망간지 벌써 나흘째라고, 포기해 영감. 그러니 누가 그렇게 닦달하래.”
핏발 선 눈으로 남자가 소리질렀다.
“백정이 세계 제일의 요리사가 되는 건 내 인생의 사명이다!!!! 찾으러 나갔다 와!!!!!!”
“그러니까 그 녀석 찾는 건 포기하라고… 영감 눈에 뜨일 만큼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라니까…”
'소설 > [탈(네이버웹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 2차 창작/ 초이+처용] 반짝반짝 빛나는 (0) | 2017.05.18 |
---|---|
[탈 2차 창작/ 잭처용] Song of Solomon (0) | 2017.05.18 |
[탈 2차 창작 / 비각+처용] 꽃밭에서 (0) | 2017.05.18 |
[탈(TAL)] 星より先に見つけてあげる (0) | 2017.05.14 |
[탈 / 자윤비각] 너의 체온은 35℃ (0) | 2017.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