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탈(네이버웹툰)]

[자윤연화] 얼마나 좋을까

보랏빛구름 2017. 6. 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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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을까
둘이서 손을 잡고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어

당신이 있는 곳, 당신의 품 속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나는 너를 생각한다. 너를 잃어버린 직후, 2년 동안이나 나는 너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은 있었지만 너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너에 대한 것도, 비각에 대한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다른 인격체 뒤로 숨어 끊임없이 현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밀려오는 생각을 피해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내가 차차웅의 왕이 된 까닭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너와 마주쳐야만 한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혹은 이 모든 것이 내가 꾼 꿈인 것은 아닐까. 원래 너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토록이나 생생한 너의 꿈을 꾼 것이 아닐까.


너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디로 가버려서 내게 그 자취 한 줌 잡혀주지 않는 걸까. 네가 사라진 이 세상에서 나는 너를 부정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차차웅의 긴 삶에서, 순간처럼 짧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덧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내가 알게 된 너는, 긴 분홍 머리카락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꽤나 강하다는 것.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만 딱히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 고타야와 죽이 잘 맞는다는 것. 그리고… 내 얼굴을 궁금해 한다는 것 정도.


각시탈인 너의 이름은 연화, 머리카락 색과 맞는 옷을 자주 입고 다녔고, 주로 쓰는 무기는 부채. 고작 그 정도밖에 너를 알지 못하는데, 어째서 나는 네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이렇게나 상처를 받았는지.


그 작고 작은 일상들이 쌓여,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점차 내 속에서 존재감을 넓혀 갈 때에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이처럼 덧없고 얄팍하다는 것을. 그 얄팍한 관계의 존재감이 내 속에서 그토록이나 무거웠던 것을.


연화, 너는 어디로 갔을까. 다른 누군가가 너를 죽인 걸까. 너는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서 흔적도 없다. 내가 왕이 된 지금에도, 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가 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왕위계승을 빨리 받을 걸 그랬다. 그러면 잭에게 물어볼 수나 있었을 텐데. 잭이 없는 지금은, 물어볼 곳이 아무데도 없어서 오히려 더 서글퍼진다.


비각은 말했다, 너를 죽이지 않았다고.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제 용마인 류거흘이 그녀를 그냥 놓아주었다고 했다. 내게 치명상을 다수 입혔으니 나는 확실히 죽였을 거라고 판단해서 굳이 그녀를 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연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어야 하는데.


너는 대체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왕인 내 명령도 듣지 않고, 어디에서 떠돌고 있는 걸까. 네가 없는 나는, 기억을 뒤지며 너와 함께 있던 시간들을 조각내고 서로 이어 붙여 가며 짧았던 시간들을 반추하고 있는데. 하지만 기억에는 끝이 있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몇 번이고 다시 긁어모으려 발버둥치지만, 시간은 모래와 같아 손 틈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 버린다.


우리는 그토록이나 짧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혼자 있는 것은 쓸쓸하다. 이맘때쯤이면 너는 내게로 다가와서, 내 탈에 손을 뻗을 것이고 나는 그 손길을 가볍게 피해낼 것이다. 너는 화가 난다며 내 주위에 있는 나무 몇 그루를 부술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바랐을 뿐인데. 그 평범한 행복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아서, 나는 오늘도 이처럼 허무하게 숨을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토록이나 서글프게 살고 있는데,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너를 잊기 위해 내가 깊이 잠들어 버렸듯이, 너도 어딘가에서 그런 꿈을 꾸며 잠들어 있을까.


언제쯤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얼굴 
살며시 스치고

내일로 사라지는

꿈을 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