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쳐? 괜찮아?”
“응?”
멍하니 있는 아쳐에게 린이 물었다. 장을 보던 도중이었다. 이것저것 사고 난 뒤에, 린이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고 중얼거리자 아쳐가 ‘그런 것 먹었다가는 네 스커트가 맞지 않게 되어버릴 걸.’ 이라고 답했다가 간드로 한 대 맞은 직후일 것이다. 간드에 뒤통수를 정확히 맞아버려서 어지럼증을 느낀 아쳐가 먼곳으로 눈을 돌릴 때였다. 그리고, 그 자세로 몇 분씩이나,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넋을 잠시 잃은 아쳐를 본 린이 아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다. 그나저나, 이런 사람 많은 곳에서 간드는 자제하는 게 좋겠군.”
“시끄러워. 당신이 그런 말 안하면 되잖아.”
“버릇이라, 미안하군.”
그러면서 웃고 있다. 아 이 남자, 분명히 날 놀려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라고 린은 생각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그나저나 요즘은 금삐까가 안보이네? 교회에서도 집나간 개는 찾을 필요없다고 무시하는 걸 보니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항구 쪽으로 내려오는 일도 없는데 말야.”
“항구도 가 본 건가.”
“별 건 아니었어. 산책하러 갔다가 랜서를 만났거든. 요며칠 애들 데리고 오는 일이 없어서 조용해서 좋다나 뭐라나.”
“그렇군…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어머. 신경쓰고 있는 것 아니었어?”
홀짝, 홍차를 우아하게 들이키며 눈을 치떠 아쳐를 바라본다. 아쳐는 고개를 돌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쳐, 이 토오사카님에게는 한참 멀었다구. 순간 마시던 찻잔을 왜 입에서 뗀 거야, 여튼 무르다니까. (아니, 그건 늠양의 눈이 너무 좋아서가 아닌가요)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집을 부탁할게. 난 당분간 에미야 저택에서 지내려고 하니까.”
“응?”
“약 실험, 성공했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세이버와 시로의 관계를 끊어버릴 테니까, 알았지? 뒷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윙크해 보인다. 아아, 린, 아직까지 그만두지 않은건가, 그거. 당연하지. 세이버는 무조건 내거라고. 질투는 보기 좋지 않다 린. 이런 대화가 이어질 심산이었겠지만, 아쳐는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여기서 린을 더 건드렸다가는, 정말로 뭔가 터져나올 지도 모른다. 이 붉은악마의 이야기는 궁금해도 여기까지.
“그럼 짐을 옮기도록 하지.”
“그래, 난 먼저 가 있을게.”
아쳐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린의 비어버린 찻잔과 대조되는 자신의 찻잔에는, 식은 홍차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이래서야. 먹을 수가 없다.
“… 역시 무리였던 건가.”
“아직까지도 짐의 여자가 될 생각이 없는건가, 기사왕.”
“닥치십시오. 식사하는데 방해됩니다.”
아니 저 절제되고 정확한 손으로 반찬을 집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긴 한데, 일단 그렇다니까. 시로는 마지막 반찬을 상에 올리면서 그대로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응? 금삐까, 여기 있었어?”
“아, 토오사카.”
“예,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곧 아쳐가 올 거야. 짐 들고 올 테니까, 내 쪽으로 보내줘.”
“알았어.”
“흠, 페이커가 오는 건가. 짐의 눈에 뜨이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과연 잡종이로다.”
길가메쉬는 비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보도록 하지, 기사왕이여.”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신과 타협할 생각은 없습니다.”
“과연 내가 선택한 여자답도다. 허나 그것도 매력이지.”
하하하- 여전히 자만에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린은 얼굴을 찌뿌리며 그대로 섰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직 한참 멀었다니까….”
아직까지 뚜렷이 기억난다. 비오는 날 저녁이었다. 아쳐는 에미야 저(邸)에 발이 묶여 술을 마시고 온다고 했으니 조금 늦을 거라고 했었다. 어두워서 작은 등을 켜 둔 채 잤었다.
자다 깨는 바람에 화장실에나 갈까 하고 1층으로 내려왔었다. 불을 켰다. 어두운 것 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쳐?!
쓰러져 있다. 비를 잔뜩 맞고서, 그 꼴로 어디를 갔다 온 거야? 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곧 내 행동을 후회했다. 아쳐는, 울고 있었다. 빗물과 섞인 눈물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을 적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린… 올라가줄 수 없겠나…
그것은 너무나도 절박한 부탁이었다. 스스로의 한심한 모습을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에서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흘끗 본 바닥에, 비죽이 흐르는 그것은,
분명히---
“토오사카?”
시로가 걱정스레 물어온다. 린의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린은 머리를 홰홰 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로에게 다시 말했다.
“별 것 아냐. 사쿠라, 나 홍차 좀 끓여줘.”
“네, 언니.”
-린,
-듣고 싶지 않아, 아쳐.
-린, 나는-
-듣고 싶지 않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쁜 건 아쳐가 아니다. 나쁜 건 아쳐가 아니야. 그것은 알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 놀고 있어서, 내 제어를 벗어났다.
-그래, 그 엉망인 꼴로 도대체 누구와 뒹굴다 온 거야, 아쳐?
어젯밤의 일을 뚜렷이 파악했다는 린의 빈정거림에 그만 아쳐의 말문이 막혀 버린다.
-누구야?
-….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 그래, 이건 본능에 가까운 것이겠지. 아니, 아니면 네 눈이 반응하는 존재가 그 녀석이라서 아는 걸까.
-길가메쉬지?
-…!
아쳐의 몸이 흠칫 떨려 온다. 아아- 아쳐는 바보로구나.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다는 거지? 웃음이 나온다. 저 바보같은 서번트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주어야 할까?
-당신의 소원은 이룰 수 없어.
냉정하게 고한다. 나의 서번트에게. 그것은- 질투라도 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면 분노라고 해야 옳은 것인가. 아무튼간에, 나는 화가 나 있었다.
- 그는 절대로, 당신을 돌아보지 않을 테니까.
-… 괜찮다, 마스터.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긋 웃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 웃음은, 묘하게 조잡했다. 입도, 눈도, 모든 것이 다 웃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울고 있는, 기묘한 웃음이란.
-내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욕심내는 그런 바보로 보이는 건가?
아니다 저것은.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것은, 스스로에게 거는 저주와도 같은 주문.
-단순히, 빛에 닿아보고 싶었을 뿐. 폐를 끼쳤군. 다음부턴 조심하지. 그나저나, 늦었다. 얼른 에미야 저로 가지 않으면 세이버가 아침을 몽땅 먹어 버릴거다.
-잘 빠져나가네, 당신.
-…익숙하니까.
나는 그제서야, 그에게 정말로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나임을 깨달았지만.
-그래, 그럼 다녀 올게.
-아아, 마스터.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그에게서 다시 ‘린’ 이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놓으면 되는 건가.”
짐을 들고 나에게로 오는 아쳐로부터, 비 오던 그 날과 같은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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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임부아쳐로 쓸 생각이었는데.
과연 언제까지 쓰다 그만둘 것인가!(두둥)
언젠가 이게 몽땅 지워진다면 포기한거라 생각하세요.
아니 그전에 보는사람도 없는데 왠 삽질?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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