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지.
현실은 모든 것이 다르다.
너를 내가 어떻게 사랑했고, 얼마나 사랑했든지간에
어차피 미래라는 것은 없었어.
…너를 사랑해서 어쩌자는 거지?
나에게는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너와 내게 있는 것은
그 어느날 비 오던 밤의 온통 젖어버린 옷과
그 날 어쩌다 생긴 아이 -마력덩어리- 뿐이고,
그것은 현실과는 분명히 동떨어진 것이었어.
늘 그랬어….
10 他人の蜜 (타인의 꿀)
그 때 나는 고작 열여덟이었다. 세상을 알기는 너무 어렸고, 이상을 꿈꾸기에는 너무 많았던 나이. 꿈이란 것은 잔인했고 그만큼 나를 상처입혔다. 나는 그 현실에 분명히 살아 있었지만, 행로는 꿈처럼 기묘하기만 했다. 어쩌다 소환되어버린 서번트, 세이버. 나의 첫사랑- 그리고, 나의 이상향. 어느 순간 기묘한 인연으로 얽혀버린 토오사카. 그리고, 나의 무관심 속에서 어둠에 먹혀들어갔던, 이름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예쁜 꽃같이 웃던- 사쿠라.
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마술사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투영과 강화라는 마술을 사용했으니까. 마술사들이 살아가는 세상 또한 아버지가 말해준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성배전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빨려들어간 마술사들의 세계는 마치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화려하고 또한 그만큼 연약해서, 나는 그 세계를 붙잡느라 그 이상의 것을 신경쓰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째서 에미야 시로가 아닌 것인가- 라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다가 조금 나를 비웃는다. 지금의 사쿠라만의 아군이 되기를 원한 에미야 시로는, 자신의 이상을 찾지 않았나.
나는,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 단순한 ‘구원자’에게서 물려받은 이상일 뿐.
나의 이상은 아니었다. 아니, 나의 이상은 ‘가질 수 없었다.’
한 번 무너져내린 나를 간신히 키리츠구의 이상으로 붙잡아 묶어 두었기에,
나는 그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이 <구원>이 아닌 <말소>를 택한 세계의 정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세상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말소>시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실제로 세계를 위협한 모든 것을 <말소>시켰을 때,
절.망.했.다.
나의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어째서 살아가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를 만났다…
처음에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대기마저도 주목하는 존재감, 스스로 왕으로써 태어났으나 그 출생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다 간 자. 영웅왕 길가메쉬. 양 어깨에 시야에 들어온 모든 인간을 짐지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힘겨워하지 않았던 자. 그의 걸음걸음은 나와 달리 가벼웠다. 그러나 그 걸음에 얼마만큼의 책임이 들어가 있는 것인가. 그 물음에 나는 감히 답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이, 너무나 놀랍고 또 부러워서.
그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또한, 절망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시간을 나의 ‘미래’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이미, 죽어 헛된 영령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와 그 사이의 거리는, 뇌와 심장의 거리만큼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그래도, 좋았다.
숨막히는 위압감으로 나를 압도하는 그 거만함이 좋았다.
나를 페이커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아무렇지 않은 행동 속에 녹아있는 미미한 친절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 헛된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미래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꿈을 꾸었었다…
현실이란 건 늘 잔인하다.
따스한 도피처나, 사랑으로 가득 찬 손짓따위 내겐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서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빛은 거짓이다.
좀 더 나를 더럽혀서 내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이 아니라 최후의 배신과 절망.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손을 뻗지 못한다.
…너의 아이를 가졌다….
-어쩌라는 거지.
네… 아이다. 영웅왕.
- 하, 남자가 아이를 가진 것을 믿으란 거냐. 어리석군. 짐이 페이커 따위 말 믿을 성싶으냐.
거짓말이 아니다. 그 날 저녁에-
- 내 아이가 아니다. 나는 관심없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아니면, 내가 직접 없애줄 수도 있다. 짐은 관대하니까.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데도,
그는 내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다.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나는, 네 곁을 떠날 수밖에 없겠지.
너의 손을 빌어, 내가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기억의 저장 창고로-
영령들의 좌(座)로―
“돌아간다.”
너는 나에겐 너무나 달콤한 환상이었어.
그게 나만의 것이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만을 위한, 그러한 달콤함이었을 뿐.
네가 짐지고 있는 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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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쓴 저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ㅎㄷㄷ;;; 김진님의 데뷔작, '숲의 이름'이라는
만화책 3권에 나오는 이야기죠. 원본은 저렇습니다
현실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래, 나희도 잘 알고 있지
현실은 모든 것이 다르다.
너를 내가 어떻게 사랑했고 얼마나 사랑했든지간에
어차피 미래라는 것은 없었어.
....
우리에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너도 그건 깨닫고 있었겠지.
...
너와 내게 있는 것은 50원짜리 빨간 지폐와 그 만큼의 사랑뿐이고,
그것은, 현실과는 분명히 동떨어진 것이었어.
늘 그랬어.
권노식, 저자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거지.
엇, 이거 설마 저작권법 위반(...) 이면 자동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먼)
타인의 꿀이라는 제목에서, 꿀은 蜜이라는 한자인데 사전에서 찾아보니 달콤하다는 뜻도 있더군요. 그래서 그냥 달콤하다는 뜻을 차용했습니다. 그게 문맥에 더 잘 맞구요 ㅎㅎ
접때 있던 소설은 그냥 지웠습니다. 전체 30제와 내용도 그닥 맞지 않고 해서요... 아마 이따금씩 그런 물갈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만 현재는 그닥 생각지 않고 있어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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