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fate관련/-[fate]애절함 30제(금궁)

15 ピストル (권총) 靴下の秘密

보랏빛구름 2009. 1. 20. 15:36

이 세상은 편리하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에 있어서.

 

손톱보다 작은 쇳덩어리가 몸에 파고들면, 열에 아홉은 사망이다. 그런 시체도 결코 곱게 놓아두는 일이 없다. 반드시 확인사살을 하는 덕에, 한바탕 군대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비릿한 혈향만이 아득하게 남아있었다.

 

그 때 나는 그 혈향에 미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15 ピストル (권총) 靴下の秘密

 

 

 

 

 

 

 

까마득하게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면증이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쳐는 몇 번째인지 모를 뒤척임을 반복하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린이 알아버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린은 그런 사생활을 남에게 이야기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 날 밤의 일은 확실히 린에게 쇼크였던 모양인지, 곧장 자신의 짐을 에미야 저로 옮겨버렸다. 거기에 서운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가 나가야 하지 않는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막막하다. 세계의 지령은 말 그대로 ‘이루어진다’. 거기에 자신이 반기를 들 수 있는 어떠한 틈이 존재할 리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되었다. 지금 자신의 몸이 수태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는가?

 

슬프게도,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려 이불을 목 위까지 끌어올린 아쳐는, 다시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도피적 의식. 그렇지만,-

 

잠이 들어, 린과의 패스가 연결되어 버린다면 -

 

그녀는 이 사실을 모두 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깨어 있는 지금이야 의식적으로 패스를 차단하고 있지만 수면이라는 상황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건이 패스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 불안감에, 아쳐는 몸을 떨었다. 어떠한 바람도 철저히 차단해줄 것 같은 따뜻한 이불 안이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구나.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그는 몰라야 했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그의 변덕스런 기분은 단 하나의 결과만을 얻으려 할 것이다. 종말. 과거 천지를 개벽했던 괴리의 한 부분으로 이제는 그 천지를 찢어내리려 하겠지. 열화와 같은 분노 이외에 그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아쳐는 잠시 이불을 꾸욱 쥐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길가메쉬는 푹 젖은 몸 그대로 다음날 아침, 교회에 도착했다. 숙취로 띵띵 울리는 머리에는 어젯밤의 어떠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저 멍청한 금발이 왜 제 교회에 보이는지 알 수가 없군요. 폴카 미제뤼아.” 라는 은발수녀의 엄청난 악담을 들으며 -사실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길가메쉬는 화를 내지도 못했다.- 방으로 들어가 몸을 그대로 침대에 뉘였다. 아 짜증나. 머리는 아프고 골은 울리고 세상은 핑핑 돌고…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길가메쉬는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술 먹다 필름 끊긴 것 뿐.

 

“어? 넌 언제 왔었어?”

“시끄러…”

“술 먹다 보니까 없어졌던데, 도대체 어젯 밤엔 뭘… 숙취라 이거지? 아주 말하기도 싫다는 꼴이구만.”

 

랜서의 주절거림과는 달리, 길가메쉬는 손만 몇 번 저어 랜서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곧장 잠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기묘했다. 마스터에게 충분한 마력을 공급받고 있는 서번트가, 그렇게 잠을 필요로 할 만큼 마력을 사용할 일이 평화로운 현재로선 없는 일이었으므로.

 

 

 

 

 

 

 

 

 

 

 

꿈을 꾸었다.

 

서번트는 꿈을 꾸지 않는다.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꿈’일 것이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 나의 기억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수녀의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런 비릿한 혈향과 차가운 금속의 울림은, 그 메마른 수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피가 흘렀을 뿐이었다. 주위에서 피가 튀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무기력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에미야 저의 그 주인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고꾸러졌다. 냉혹한 총성과 함께 그는 죽었다. 미간이 꿰뚫렸다. ‘그’는 지키지 못했다. 그저, 공격을 퍼붓는 이들에게 공격을 가할 뿐.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핵심’이 되는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연료탱크를 맞추어, 그 곳을 폭파시키면 전멸일 그들을, 일일이 ‘활’로 제압한다. 그 와중에, 그의 근처에 있던 한 남자가 등에 총을 맞았다. 남자의 뺨에도 총탄이 스쳤다.

 

 

 

아아,

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멍청한 녀석은 누구지.

 

 

어느 순간 기억이 단선되고 다시 이어졌다. ‘그’였다. 동료의 시체를 모두 파묻었던 듯했다. 그 위에 표식 하나를 남기고, 그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방금 전, 군대가 진을 쳤던 곳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주워든다. 총기류였다. 그 쇳덩어리를 일일이 다 주워서, 그것도 어느 바닥에 파묻기 시작했다. 권총 한 정을 주워든다. 총알을 다 썼을 뿐, 멀쩡했다. 그것을 잠시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렇게 한참을 계속한 뒤에, 망연한 표정으로 까마득히 먼 어느 곳을 바라본다.

 

오롯이 홀로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구라트 위에 서서 백성들을 바라보며 지배하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이해할 수 잇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그 뼈저린 고독은-.

 

그러나, 그는 또 다시 걸었다. 걸음걸음마다 핏방울이 떨어져서 대지를 적셨다. 마른 모래는 핏방울을 곧 말려 버렸다. 그렇게 말라붙은 상처를 대충 천으로 감아놓고, 그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났다.

 

- 피비린내가 나는 곳으로.

 

 

 

 

 

 

온몸을 부딪쳐 구원한다. 그러나, 그 구원의 목적은-,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는 것.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이상.

 

 

길가메쉬는 차게 웃으며 그 꿈을 베어냈다. 아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꿈은 끝났다.

어린아이의 순진함과도 닮았던 그의 걸음걸음을 각성과 함께 잊어버리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