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프는 묵묵히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죽음은 알고 있다. 덤덤히 받아들일 각오도 되어 있다. 자신의 생성 의지가 끝나면 사라지는, 그 일반적인 것에 모두들 슬퍼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나치게 오래 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너무 오랫동안 맡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슬퍼하지만 그 때 뿐일 것이라고, 곧 각자의 삶을 찾아 다시 살아가고 그리고....
"잊어가겠지."
그것은 자신에게 전혀 슬픈 일이 아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세피로 내의 생명체들이 그러하였듯, 자신도 그렇게 될 뿐. 자연의 섭리에 따르겠다는 자신의 의견이 그렇게나 잘못된 것인지, 크레프는 알 수 없었다. 다들 자신의 탓을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를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의지를 탓할 뿐.
하지만.
'친구한테 주라고 했거든요.'
이상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풀 길이 없어, 크레프는 그저 웃고 말았다. 여전히 세피로는 아름답다. 죽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날이다. 자신의 죽음이 만약 이 세계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죽어 이 세계의 거름이 될 수 있다면. 크레프는 그저 기도한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산책을 끝내고 천천히 걸어오는 길에 크레프는 우미를 만날 수 있었다. 우미는 잔뜩 슬픈 눈을 하고, 말한다. '크레프, 가지 말아요. 멀리 떠나지 말아요...... 그 무거운 짐을 지워 준 것 말고는, 우리가 해 준 게 없잖아요. 부디 가지 마세요....' 그 우는 모습을 보면서, 크레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아서, 내가 뭘 해 줘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 울지 마. 우미. 네 탓이 아니야."
우미는 더 크게 울어버린다. 크레프는 슬픈 표정으로 우미를 달랬다. 울지 마, 네가 울면....
..... 네가 울면 내가 슬퍼.
차마 그 말만은 하지 못하고, 크레프는 조용히 우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미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걸려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하늘을, 물을 닮은 그 색에 시선이 빼앗겨, 크레프는 망연히 눈을 감았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끊임없이 미련이 생겨서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아직은, 아직은 안 됩니다.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면,
아직은....
텅 빈 공간에서 히카루는 란티스에게 말했다. 부디, 지금부터, 며칠간은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고. 자신이 먼저 당신을 찾아가겠다고 한 그 말에도 란티스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동자가 강한 의지를 담고 번득였다. 옆의 후도 조심스레 미소지었다. 그녀가 있던 곳은, 과거 에메로드 공주가 있던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이었다.
"란티스, 나 기도할 거야. 나는 기둥으로 선택받았으니까, 할 수 있어."
"저는 과거 '레이어스'였으니까요. 저도 할 수 있을 거에요."
웃으면서, 그녀들은 말한다.
"저희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저희들이..... 크레프를 구할 거예요. 모두가 기도해 주세요. 크레프는 살아야만 해요."
너를 믿는 마음이 없다면 제롬,
나는 어떻게 될까?
네가 강하다는 것을 늘 느껴야 돼.
약해지지 말아.
-좁은 문,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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