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탈(네이버웹툰)]

[희연무영] - 1

보랏빛구름 2017. 6. 26. 17:47

===== === === === ===

 

 

 

이 세상은 보통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하나씩 괴물로 변해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 괴물을 '감염자'라고 불렀다. 괴물로 변해간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 특수한 능력자로 이루어진 팀이 국가적으로 꾸려졌다. '면역자'라 불리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모든 행동을 국가로부터 통제받으며 지내야 했다. 


어느 날, 세상이 무너지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괴물로 바뀌었고,

그리고 그 날, 모든 사람들이 괴물에서 사람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네?"


희연이 눈을 깜빡거렸다.  뜬금없이 나온 질문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면역자들이 정부 기관의 손을 벗어날 것이란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있었으나, 뒤엣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희연의 옆에 있던 윤은 그렇냐는 듯 밍숭맹숭한 반응을 보일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자네들을 정식으로 이곳에 채용하고 싶네만...."

".... 여기 나가자마자 재물손괴죄와 폭행죄, 살인미수 및 기타 죄목으로 고소당해서 평생 깜빵행 아니라는 걸 감사해야 하나요."

"너무 그러지 마, 이 양반이 무슨 힘이 있어. 기껏해야 결정사항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을 사람이야. 신경 꺼."

"말이 심하지 않나....."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당신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라는 겁니다. "


희연이 짜증스레 이를 악물었다. 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희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희연은 고개를 내젓고는 곧장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백수 탈출할 좋은 기회였는데."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일자리만큼 쓰레기였던 게 어딨어."

"그건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잖아. 윤은 뒷말을 삼켰다.
 

감염자가 사라진 지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혼란스럽던 사회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자,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이 있었다. 감염자가 사라졌으니 감염자 처리를 위해 존재하던,  면역자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폐기되었다. 시스템이 폐기되면서 면역자로서 활동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로 몰려 나와야 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면역자를 곱게 보지 않았다. 감염자를 처리할 때의 행태가 폭력적이었다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 위협적으로 느껴져서일 수도 있다. 어쨌건, 면역자들은 물 위에 동동 뜬 기름처럼, 민간인과 어색한 동거를 할 예정이었다.

 

그 즈음에 여러 회사에서 물밑으로 조용히 면역자에게 접촉하기 시작했다. 희연도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힘을 좋은 데에 쓰셨으면 좋겠다고, 경호 업무를 맡기고 싶다고 했던가. 많은 면역자들이 기뻐하며 회사에 취업하겠다고 했다. 면역자의 실력, 신분,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제안이 들어왔던 모양으로, 한 달간의 유예기간 동안 직장을 얻지 못한 면역자는 희연과 윤 둘 밖에 남지 않았다. 희연은 자신에게 일을 권하러 온 사람에게 대놓고 '수상하다.'며  단칼에 거절했고, 윤은 몸이 좋지 않다며 거절했다. 모든 권유를 물리치고 나니 이번엔 상사로부터의 (강제) 입사 권유라니. 잔뜩 신경질이 난 걸음을 다독이려는 듯 윤이 뒤에서 천천히 걸음을 맞췄다.

 

건물 입구 근처에서 둘은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희연은 내일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고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의 면역자'로서 제 장기의 절반이 검사 등의 이유로 뜯겨나가, 윤의 몸은 빈말로도 괜찮다고 하기 어려웠다. 면역자였을 때에야 국가의 여러 기구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울 것이다. 윤의 몸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에 희연은 꽤 예민하게 굴었다. 희연에게 더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윤은 예약한 병원의 연락처까지 알려 주며 희연을 달래야먄 했다.

 

 

 

 

 

희연이 제가 지내는 원룸 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것은 익숙한 방과 익숙하지 않은 인영 하나였다. 분명히 아침에 끄고 나갔을 방의 불은 훤히 켜져, 침입자를 훤히 비춰 주었다. 떡하니 풀슈트 차림으로 삐딱하게 침대에 걸터앉은 그 자세가 참으로 건방지기 그지없었다. 신무영. 이 나라의 정재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그 대단한 양반이 왜 이 초라한 원룸까지 강림하셨나. 희연은 그대로 무기를 투영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원룸의 특성상 싸우기도 전에 이 층 사람들이 전부 뛰쳐나올 게 뻔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원룸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희연이 퉁명스레 물었다.

 

"뭐야, 네가 왜 내 방에 있는 건데."

"내가 친절하게 연락을 넣었는데 안 받길래 잡으러 왔지."

"일 이야기면 사라져, 난 할 생각 없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테니까."

 

무영이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까드득 깨물었다. 희연은 얼굴을 찌뿌렸다. 지금처럼 좁은 방이 이렇게 불편할 때가 없었다. 피할 공간도 없었기에, 희연은 의자에 앉아 무영을 바라보았다. 심드렁한 표정엔 빨리 가라는 표상만이 가득 떠 있었다. 여유롭게 사탕을 다 씹어 먹고 나서 빈 사탕막대를 입에서 빼내며 무영이 말했다.

 

"네 친구, 이름이.... 윤이던가?"

"...?"

"살리고 싶으면 같이 가는 게 좋아."

"뭐, 야! 무슨 짓을...!"

 

다급히 희연이 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도, 전화도 없이 깨끗했다. 익숙한 전화번호를 누르고 초조하게 응답을 기다리고 있자니, 신무영이 미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전화, 안 받을 걸"

-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희연이 짜증스레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말 그대로 박살났다. 소리는 어찌나 컸던지 옆방에서 벽을 두드리며 외쳤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무영이 조용히 좀 하라는데? 라며 빈정거렸다. 희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영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제 좀 갈 마음이 드나?"

 

 

 

 

 

무영의 집은 언제 와도 익숙하지 않다. 넓은 거실에는 무영과 희연밖에 없었고, 소파와 벽걸이 장식만이 비치되어 있어 소음을 만들어줄 TV도 보이지 않았다. 짜증스런 희연의 표정을 보며 무영은 사탕 먹지 않겠냐며 노란 레몬 사탕을 내밀었다. 희연은 거칠게 사탕을 받아 입에 물었다. 반쯤은 제 신경질을 가라앉히기 위한 행동이었다. 물론 1초만에 그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지만.

 

"우엑! 퉤퉤! 야!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레몬맛."

"미친, 생레몬도 이것보단 덜 시겠다!"

"먹다보면 익숙해져."

"네 혀는-"

 

화를 내려던 희연이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문이 열리며, 낯선 남자와 윤이 함께 들어왔다. 금발에 녹안의 낯선 남자는 이상하게 단단히 골이 나 있었다.

 

"이놈아 대체 어디서 델꼬 왔노!? 몸뚱아리가 와 이꼴이고?"

"잡아당기지 마. 아프다고."

 

 윤은 생각보다 멀쩡한 차림새여서, 희연은 긴장했던 제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무영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낯선 남자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

 

"새하 네가 못 볼 정도야?"

"이 아는 내 혼자 힘으로 될 끼 아이다. 왕한테 연락 좀 해야 쓰것다. 니 용마 좀 써라."

"너, 너 별 일 없어? 괜찮아?"

"희연이 너는 왜 여기 있어?"

 

목소리들이 동시에 섞였다가 흩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갈 길을 잃고 헤메다가 동시에 무영에게로 향했다.

 

"뭐꼬, 니 뭔 일 저질렀나. 야는 누고? ....... 꼭..."

"얘기한 적 있지? 면역자 중에서 제일 쓸만하다던 녀석."

"아, 그놈아가. .... 참..... 허,"

"그리고 윤이라고 했나, 저 녀석 몸 봐줄 의사다. 새하라고 하지. 탈이기도 하고, 실력은 내가 보장할 테니 기다려. 어차피 우리들은 보통 사람이랑은 다르니까 이쪽 의사한테 치료받는 게 나을 거다."

"뭐, 그, 누구 맘대로!"

"진정해..... 뭐, 내 몸을 봐준다는 건 감사하지만 말이죠. 당신에겐 이득도 없을텐데 왜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당장에라도 무영에게 달려들 것 같은 희연의 팔을 붙들고 윤이 물었다. 무영은 잠시 희연이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희연이에게 두고 있지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물론 공짜는 없지."

 

표정은 곧 바뀌어, 희연은 익숙한 무영의 얼굴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니 너 대신 쓸모 있는 널 써먹어야지."

 

그것이 희연이 무영이의 경호를 (강제로) 맡게 된 첫날에 일어난 모든 일이었다.

 

윤은 가끔 이 날을 회상하면서 혼자 실없이 웃곤 했다. 평소엔 혼자서 인생 다 산 것 같은 표정의 희연이 얼이 빠진 모습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빠진 얼굴로 '뭐... 뭐, 내, 내, 내가 왜!' 라며 뒷걸음질 치다가, 저를 보다가, 어쩔 줄 몰라선 어벙하니 머뭇머뭇하더니, 신무영이 내민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해버렸다. 윤은 희연의 나이를 다시 세어 보았다. 열 아홉. 만으론 아직 열 여덟. 담배도, 술도 사지 못하고, 선거권조차 없는 열 아홉.

 

그 나이에 맞는 어리숙한 그 표정을 윤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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