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자' 와 '만들어낸 자'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가 있지."
"거리라니?"
에리얼은 예의 그 웃음띤 얼굴로 루비 문을 쳐다보았다. 그에게서 돋아난 검은 날개가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다. 그믐날 밤. 사늘한 달빛이 요요하게 날개를 비춰주고 있었다.
"유기체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거리가 줄어드는 건 아냐."
"그거- 혹시 유에 이야기야?"
"맞았어."
싱긋- 웃으며 에리얼은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마치 호수처럼 물결치며, 어떤 인영(人影)을
비춘다. 보라빛 도는 은색 눈동자. 그에 공명하듯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자신이 창조한 자- 유에.
"그러면, 크로우 네가 이곳에 환생한 이유가 '그' 에게 있는 셈이겠네?"
"...... 겸사겸사."
웃고 있는 소년의 표정이, 마치 '더 이상은 대답해주기 싫은데, 묻지 말아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루비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
창조주와 창조된 자의 거리.
그 거리를 없애기 위해, 너는 영원한 안식 대신 환생을 선택한 거다.
크로우 카드와, 체리를 위해서라지만- 네가 죽기 전, 크로우 카드를 소멸시키고,
창조한 자들을 본디 네 힘으로 돌리면 아무런 일이 없을 텐데.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건,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네 힘을 돌려주겠어."
"유에..?"
"..... 이제 체리의 힘으로도 버틸 정도는 되고, 더 이상 체리도 마법을 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너는 마력이 없으면 피곤할 테고.."
"괜찮겠어?"
걱정스럽게 도진이 물었다. 유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다. 유에는 천천히 자신의 날개로 그를 감쌌다.
".... 고마워."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을 끝으로, 도진이는 잠시 잠이 들었다. 유에는 힘이 빠지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옛날처럼 체리가 마력을 과하게 쓸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청명이가 평소 때처럼 먹어두는 걸로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천천히, 날개를 접으며 도진이를 들어올려 침대에 뉘였다. 그 때와 같은 이 곳, 양호실. 유에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흰 깃털이 흩뿌려진 그 곳에는 안경을 낀 한 사람만이 누워 있었다.
"그래서- 다들 초대하고 싶어. 샤오랑도, 체리도, 지수도. 아, 더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불러도 좋아. 파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에리얼이 웃는 얼굴로 말하자, 체리는 기쁜 표정이었다. 샤오랑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싫지는 않은 듯했다. 지수는 체리에게 옷을 만들어 주겠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아,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체리의 오빠랑 청명이 형도 와 주었으면 좋겠어."
"응, 꼭 데려올게!"
고개를 끄덕이는 체리를 보며, 에리얼은 평소와는 다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와- 에리얼네 집은 정말 넓구나-"
탄성을 내뱉은 사람은 의외로 체리가 아니라 청명이였다. 체리는 한번 이 곳에 온 적이 있기에 청명이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도진이는 파티에 오는 사람답게 차려 입고 있었지만, 쳥명이는 학교 부원 일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라고, 교복을 입고 와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에리얼은 그에게 희고 긴 망토를 빌려주었다. 그럭저럭 파티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에리얼이 가져다 주는 음식들은 모두 맛있는 것들 뿐이었다. 더해서, 화원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눈을 즐겁게 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그런 즐거운 파티도, 어둑어둑해져서 달이 질 시간이 되자 끝났다.
"에리얼, 즐거웠어."
"멋진 파티였어, 에리얼."
"고마워."
에리얼은 모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며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티는 즐거운 것이지만, 뒷처리가 결코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당혹스러움을 알아챈 체리가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에리얼은 공손히 거절했다.
"파티의 손님인데, 그런 것까지 시킬 순 없어."
"하지만 에리얼. 혼자서 치우긴 힘들텐데, 내가 도와줄게. 체리야 집이 머니까 지금 간다고 해도, 난 에리얼네 집과 가까우니까 얼마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청명이가 호의적인 말을 건넸다. 에리얼이 흘끗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가 있다고 하자, 체리도 곧 있겠다고 했다가 도진이에게 끌려서 억지로 집으로 갔다. 지수와 샤오랑,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 모두 흩어졌다. 다들 떠난 뒤, 에리얼이 청명에게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요."
"그래. 들어갈까?"
청명이 웃으면서 문으로 손을 뻗는 순간, 에리얼이 청명의 등 가운데 손을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작게 읊조렸다.
"유에-."
그리고, 청명의 기억은 그곳에서 끊겼다.
하늘하늘한, 연약해 보이고 가느다랗기만 한 흰 깃털들이 어둔 하늘을 수놓는다. 달빛이 없어도, 달빛을 대신할 수 있을 은빛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크로우...... 아니, 에리얼....?"
"내 이름을 잊지 않아주다니, 영광인걸."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날 깨운 거지?"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인걸."
에리얼은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손짓했다.
"들어가자. 할 말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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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쓰다가 흠칫한 점.
레이아님,
혹시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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