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타등등]

[에리얼X유에] 만들어진 자와 만들어낸 자. 下

보랏빛구름 2006. 8. 25. 17:09

"이곳은-"

 

한 걸음 뗀 유에는 놀란 표정이었다. 옛날, 크로우의 집이다. 언제나 존재하던 익숙한 체취. 그 속에서 케르베로스와 유에는 지냈다. 자신이 봉인된 날- 그 날이 기억난다. 사실, 유에는 끝까지 크로우의 곁을 지키고 싶어했다. 강제로 봉인시킨 건 크로우.


"전생의 나의 집이지. 역시 이곳이 편하더라고."

 

".... 그런가......"

 

"그나저나 마력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힘을 돌려줬나보지?"

 

"더 이상 마법을 쓸 일 따윈 없을 테니까. 크로, 아니..... 에리얼."

 

"익숙하지 않은가보네."

 


에리얼이 웃으며, 봉인을 해제한 마법봉을 휘둘렀다. 어느새 깨끗이 정리된 바깥을 바라보며, 유에는 얼굴을 찌뿌렸다. 자신을 왜 불렀는지 알 수 없다. 전생이든 후생이든, 이 마법사는 도대체 자신에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죽기 전에도 그랬듯이.

 


"날 부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크로우 리드의 환생체가 아닌, '에리얼' 로써 유에와 만나고 싶었으니까."

 

"뭐?"

 


유에가 에리얼을 바라보았다. 지금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 만난 적이 있잖아."

 


마지막 싸움에서. 네가 네 마력을 체리의 아버지에게 나눠주었을 때. 그 때, 에리얼은 분명히 말했다.

 


「아무리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난 크로우 리드가 아니니까.」

 


잔인한 말이었다. 크로우 리드가 아니라면, 자신의 삶 따위는 의미없다는 생각에 가득찬 유에에게는. 인정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외쳤는지 모른다. 크로우는 어째서, 자신을 심판관으로 선택했을까. 크로우를 원망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어서, 별 수 없이 체념해버린 마음. 그래서 자신은 청명이에게 새로운 마음을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그 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걸. 난 유에랑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어."

 

".... 불가능해, 그런 건...."

 

"아직까지 크로우의 그늘에 갇혀 있는 건 아니잖아? 넌 더이상 크로우가 만들어낸 생명체가 아냐. 넌 '유에' 라고."

 


유에는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그리고는 쓰러지듯 거실의 소파에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는, 안쓰럽게도 자신의 옷자락만이 한 주먹 가득 쥐여 있었다.

 


"....."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야, 유에?"

 

"나는...."

 


 

유에의 떨리는 은보랏빛 눈동자에 에리얼이 박힌다.


 

"네가 미워...... 에리얼."


 

눈시울이 젖어들어간다.


 

"내 마지막 희망까지 부수는..."

 


 

에리얼이 천천히 유에의 뺨에 손을 대었다. 손등을 간질이는 은빛 머릿결이 기분좋다고 느끼며, 에리얼은 웃었다.


 

"..... 네가, 미워..............."

 


유에는 고개를 떨구었다. 에리얼은 그에게로 다가가서, 유에의 어깨를 안았다. 가느다란 어깨가 가볍게 떨린다. 알고 있다. 너는, 이리도 마음이 여려서, 언제나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케르베로스를 같이 붙여 놓은 것인데.

 

새 주인을 거부할 수 있었다. 체리가 월령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보름달이 뜬 날 밤의 유에의 힘은 막강했다. 강한 마력으로 체리의 바람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체리를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이 없어져가는 와중에도, 아무에게도 손을 뻗지 않았다. 도진에게 말하려 했을 테지만, 청명이가 강하게 거부했었다. 그런 쳥명의 마음을 묻을 수 있었는데도, 그는 그냥 받아들여 버렸다. 청명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유에는 곧 사라져 버렸겠지. 에리얼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 마. 왜 그러는 거지? 대화 하나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걸."

 

"........무슨 대화?"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묻는다. 그렇게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는 듯, 에리얼이 웃었다. 유에를 소파에 앉힌 뒤, 건너편 소파에 앉은 에리얼이 가볍게 탁자를 치자,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생겼다. 유에는 무심코 찻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멈칫하며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그런 유에의 모습을 보며 에리얼은 다시 한 번 새어나오는 웃음을 제지하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저 예민하신 아가씨께서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으시는 날에는 무슨 일이 터질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커피를 싫어하나보네."

 

"그런 건 아냐."

 

"그 은빛 머리카락도 여전하고. 달이 없어도, 네가 달빛을 내 뿜으니까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

로 아름다워."

 

"이.. 이상한 말 하지 마!"

 


드물게 발끈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진 유에를 바라보며, 에리얼은 또다시 이름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무슨 말을 할 건지나 말해."

 

"내가 너를 봉인했지. 기억을 수정하고. 그리고- 나는 이제 이 육체에 깃들어 있는거지."

 

".........그래, 그랬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는걸. 그대로 있으면 내 육체는 소멸하고, 결국 유에도 사라져 버렸을 거야."

 

"하지만!"

 


유에의 눈동자가 울 것처럼 쓸쓸하게 변해갔다. 너는 어째서 과거와 변함이 없는거야. 그 바보같은 생각까지, 왜 하나도 변하지 않는 거지. 괴짜같은 행동을 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게 힘을 잃는 거였더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수만가지 말들이 입안에서 맴돈다. 한 마디라도 내뱉었다간, 끝없이 외치게 될 것 같아 유에는 억지로 그 말들을 삼켰다.


 

"그리고- 그 육체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까."

 

"원하는 것..?"

 


에리얼이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아- 하고, 유에가 중얼거렸다.

 


"마력을 둘로 분할하는 것?"

 


에리얼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이런, 유에. 그렇게 둔해도 곤란해."

 

"?"

 


전혀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리얼을 바라보는 유에의 눈동자가 미묘한 빛을 띄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커피잔을 끌어당겨 쥐고 한 모금 마시는 유에의 손길에는 분명한 망설임이 있었다.


 

"만들어진 자와 만들어낸 자와의 관계를 끊는 건, 환생 뿐이었는걸."

 

"..........."


 

약간 멈칫한 손이, 한 모금도 채 마시지 못한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관계를 끊으려면- 다른 방법도 많잖아......."

 

"하지만- 그 땐 대등한 관계에 있을 수 없었어."

 

"당연한 거잖아.네가 우릴 창조했으니까."

 

"그래서 싫었어. 창조주로 남아 있으면-

 

 

 

 

 

 

 

너와 함께 있을 수 없었으니까."

 

 

 

 

 


"에.. 리얼....?"

 

 


"내가 너를 만들었기 때문에, 너는 나에게 '복종' 할 수밖에 없어. 난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원했는걸. 하지만 깐깐한 유에가 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는걸."

 

"그래서...."


 

환생.. 했다고..


 

"에리얼-."

 


 

나 때문에

 

 

 

날 위해서.

 

 

 

 

 

"자- 천천히 차나 들이킨 뒤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자."

 

에리얼이 마법지팡이를 한번 더 흔들었다. 탁자가 물결치듯 흔들린 뒤, 유에와 에리얼 앞에는 밀크티가 놓였다.

 

"할 이야기는 많으니까. 밤을 새서라도."

 

 

 

너와 나의 이야기를 하자.

 

끝없이 흐르는 저 강처럼, 끝없이 움직이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많이 흔들리면서도,

 

바뀌지 않은 하나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그 마음을

 

서로 조금씩 더 알아가자고,

 

즐겁게 즐겁게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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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진지

 

중간엔 어중떠중, 중얼중얼.

 

끝은 흐지부지.

 


........... 아아, 옛날 나쁜 버릇이 도져버렸어요 OTL

 

뭔가, 수정안한 티가 팍팍날까 두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