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위를 좀 심하게 먹었나… 반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마사무네는 아이스커피를 쭉 들이켰다. 열대야가 너무 심해 도둑 들 것 각오하고 창문이랑 다 열어놓고 잤다지만, 결국 며칠동안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고로 수면부족이라 이거다. 다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올려 정면에 있는 시계를 보니 열시 반이 좀 넘었는데, 코쥬로가 보이질 않는다. 뭐지… 설마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조금 걱정해 보지만 어느새 다시 꾸벅, 이 더운 햇볕 아래에서도 잠이 오는데 어째서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거냐고, 조금 투덜대 본다. 35분을 지나는 분침을 흘끗 곁눈질로 확인하고 다시 코쥬로가 늘 서 있던 장소를 본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이상하네. 마사무네는 어느새 다 마신 커피의 얼음을 뒤적이며 얼굴을 찌뿌렸다. 여기서 계속 기다려볼까?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 역시 여름이라 더위를 탔나? 시야가 조금 뿌옇게 변하는 것에 잠시 오싹한 기분이 들어 눈을 비비니, 다시 멀쩡해진다. 역시 여름이 독하긴 하구나…. 가만히 기다려볼까 싶어 있어보지만, 역시 10분이 더 지나도 오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려나… 여기 말고는 가는 곳도 모르는데.
멍하니 서 있다가 11시가 되어서도 그 자리가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발을 뒤로 옮겼다. 햇볕이 너무 더워서일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햇볕을 쬐었는가 보다. 적당히 그늘에라도 서있을까 싶어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 벤치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손목이 잡혀 으슥한 골목으로 밀쳐졌다. 더위에 신경이 둔해져 있던 터라 누군가가 뒤따라 붙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인지한 까닭에, 몸은 밀치는 대로 그대로 밀려,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해서 뭐야! 라고 외치기도 전에, 그는 손으로 목을 죄었다.
“-조용히.”
코쥬로?
“가만히 있는다고 한다면 놓아준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코쥬로의 큰 손은 마사무네의 목을 제대로 누르고 있었다. 숨도 쉬기 힘들어 손으로 코쥬로를 밀어 보았지만 체격차이가 현저한지라 무리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경고하듯이 한번 꾹 목을 누르고 손을 천천히 풀어준다. 손이 풀리자마자 기침이 튀어나왔다. 쿨럭쿨럭, 정신없이 기침을 해대다가 시선을 올리면 거기에 코쥬로가 있었다.
“뭐야…콜록, 대뜸 사람을, 콜록.”
“이때까지 날 엿보던 사람은 너일텐데. 할 말이 있는 건 내 쪽이다.”
아이스커피를 어디다 떨어뜨렸는지 빈 손에는 콘크리트 바닥만이 잡혔다. 멈칫멈칫 뒤로 물러섰다. 코쥬로를 보고 싶긴 했지만 결코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코쥬로 손에 목이 졸린 기억이, 옛날의 기억을 상기시켜 오싹해진 것도 없잖아 있었다. 조심스레 뒷걸음질치자, 코쥬로가 약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자꾸 이쪽을 보는 거지?”
“I don't know. 본 적 없어.”
“두 달 전쯤부터 보는 것 같던데.”
“우와, 형씨 중이병은 아니지?”
이런, 생각보다 눈치가 빨랐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옷을 축축하게 적셨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의외로 이런 데서 눈치 빠르지 말란 말이다, 코쥬로…!
“미안하지만 난 알바가 있거든, 가 봐야겠는데. you see?”
“….”
머뭇머뭇 일어서자, 코쥬로는 별 말 없이 마사무네를 한번 쳐다보고는 길을 터 주었다. 슬금슬금 마사무네는 코쥬로 옆을 지나쳐서 빠른 걸음으로 곧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예의주시하다, 코쥬로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방금 전 쓰러뜨릴 때 슬쩍한 것으로, 마사무네의 것이었다. 무난한 디자인에 케이스도 없고 좀 험하게 쓰는 편인지 모서리가 좀 너덜했다. 플립을 열자 단순한 배경화면에 문구도 없다. 통화버튼을 눌러보자 비슷비슷한 연락처가 몇 개 중복되어 있는 걸로 봐서 인맥관계는 단순한듯. 핸드폰 문자메시지도 그렇게 온 건 없고 ‘마에다’ 라는 사람에게서 “마사무네, 요새 잘 지내? 한번 내려갈 테니까, 제발 밥 좀 잘 챙겨 먹어!” 라는 문자가 사흘 전에 온 것 말고는 문자도 딱히 확인할 게 없다.
혹시나 싶어 사진 쪽도 뒤져보았지만, 있는 거라고는 자신이 자주 가던 영화관 앞, 그리고 사람들을 찍은 사진 몇 컷 뿐이다. 코쥬로의 미간에 세로줄이 그어졌다. 괜한 사람을 위협한 게 아닌가 싶어 코쥬로는 머리를 짚으며 사진을 휙휙 넘겼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사진을 다시 바라본다. 서너 장 찍힌 사람들을 훑어보자,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그 안에 있었다. 어느 구석이든.
“…”
코쥬로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너무 작게 찍혀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자신이 건설업계 쪽 사람인데다 조폭 쪽과도 인맥이 있는지라 혹시나 다른 건설업자 쪽에서 보낸 스파이인가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요즘 세상에 폰에 비번도 안 걸고 별달리 볼 것도 없는 녀석이면, 신상 털어봤자 별로 나오지도 않을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코쥬로는 폰을 들고 이걸 어떻게 하면 저 녀석에게 조용히 다시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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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눈치도 빠르십니다. 속으로야 몇 번이고 궁시렁댔지만 막상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달려서 도서관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적당히 책을 펴들고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쐬자니 한숨이 픽 나온다. 그래, 전생에서부터 코쥬로 녀석은 눈치가 매서웠지. 그게 하필이면 자신에게 향할 건 뭐냐고, 한숨을 쉬며 다테는 별 든 것도 없는 가방을 의자에 걸어놓고 멍하니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란 곳은 이럴 때 참 편하다. 맘껏 있어도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 시원한 공간.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다가 도서관이 닫을 시간이 되자 밖으로 천천히 나왔다. 버스 타고 두 정거장쯤 가면 알바하는 편의점이 나온다. 한숨을 내쉬고, 시간을 확인하려고 가방을 뒤졌는데…에, 핸드폰이…
없다??!
마사무네는 창백한 표정으로 가방을 툭툭 털어봤다. 별로 들어있는 것도 없는 가방이니, 없는 것이 눈에 딱 띈다. 설마, 아까 전에 멱살 잡혔을 때 흘린 건가? 허둥지둥 아까 그 골목으로 달려가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다른 곳에 흘린 건가 싶기도 해서 왔던 곳을 죽 훑어봤지만, 없다….
“Shit, 한 방 먹었나, 코쥬로.”
쯧, 혀를 찼다. 핸드폰으로 나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던 건가. 그렇지만 핸드폰을 그닥 신경쓰지 않는 마사무네로써는 잠시 생각해봐도 그 안에서 캐낼 만한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새벽 4시면 울리는 알람, 케이지 녀석이나 가끔 유키무라에게서 오는 문자, 사진… 설마하니 그 흐릿한 이미지 속에서 자기를 찾진 못하겠지.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렇지만, 폰을 찾지 못하면 곤란한데. 마사무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버스에 올라탔다. 어쩌지, 그거. 마사무네가 아는 코쥬로는 영화관 앞에서 만나는 단 30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잠시, 마사무네는 그가 다음 주에도 그 앞에 서 있을지 없을지 고민해야 했다. 아니면 어디서 분실신고라도 들어오려나. 그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한숨을 내쉬어 본다. 어쨌든, 코쥬로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과 꼭 닮은 성격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는 가끔 자신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곤란하면 이마를 짚는다던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 있다던가, 잽싼 손놀림이라던가, 그런 것.
그래도 그건 옛날 일이고, 자신은 알바생인거다. 편의점 알바는 의외로 그닥 할 일은 없고 편한 편이다. 저녁 알바라 오후 10시가 넘어가면 사람이 없는 것도 특징이고. 주말에만 뛰는 알바이긴 하지만 저녁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조금 졸리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야. 어차피 뒤에 할 일도 없으니 집에 가서 자면 된다. 알바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지나갔고, 그닥 할 일도 없는지라 졸린 걸음을 나직하게 옮길 때였다.
긴장이 느슨하게 풀린 상태였고 졸린 걸음이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대처가 늦은 것일수도 있었다. 고통은 한순간이었다. 지릿한 느낌을 받고 잠시 휘청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머리가 핑핑 울렸다. 띵 한 것 같기도 했다. 간간이 있던 통증이지만 이번만큼 심한 건 처음이었다.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근처 벽에 몸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턱턱 막히는 숨에 머리가 도끼로 내리찍히는 듯한 격통이 마사무네를 미치게 만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집었다. 손을 더듬어 가방을 찢듯이 열고 약을 찾았다. 진통제가… 여기… 어딘가에… 입술을 꽉 깨물고 약을 찾는데 뺨이 축축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그 단어만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캄캄했다. 그것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어이, 어이-? 괜찮아? …병원에… 아. 이봐…
코쥬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녀석이었다. 폰을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회사에서 잠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일을 처리하러 갔다 새벽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폰의 처리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다가 그냥 주웠다고 하고 경찰서에 갖다줄까 생각하는데, 텅 빈 길에서 한 사람이 갑자기 비틀대다 길가에 주저앉는 걸 보았다. 술 취한 사람인가 싶어 좀 더 빨리 달릴까 했는데, 얼굴이 낯익었다. 설마설마 싶은 마음에 차를 세우니 그 녀석이었다. 깜짝 놀라 차에서 나와 다가가는데, 가방을 꽉 붙잡더니 갑자기 몸이 축 늘어진다. 위, 위험한 건가?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코쥬로는 자신이 이 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코쥬로는 왜 자신이 이러고 있을까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았으나 답은 없었다. 아이를 키운 적은 없는데 기묘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의사에게서 응급처치는 끝났고 등등등의 이야기를 모두 머릿속에 저장해둔 뒤, 딱히 데려갈 곳이 없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남을 이런 식으로 들이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얼굴을 찌뿌리며 코쥬로는 의사의 말을 머릿속으로 대강 훑었다. 그리고, 마사무네를 방에 눕혀놓은 뒤 느긋하게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 미행이라던가 스파이는 아니니까, 좀 더 느긋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물론 친절하게 핸드폰을 가방에 우선 밀어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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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전바 카테고리를 만들까여..
그리고 요즘 버닝 멈춘 카테고리를 합칠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만,
생각해 보니 페이트 쪽 30제랑 44제는 아직 완결도 안 낸 나님이 있습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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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워버릴까? 라는 고민을 하는 저였습니다. 설마 저 소설 보시는 분은 없겠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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