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쥬로는 사귐에 있어서는 깊고 진중한 관계를 지향했지만, 슬프게도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그런 관계를 그닥 용납하지 않는 곳이었다. 건축업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회사이지만, 또한 이렇게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은 뒷세계와의 은밀한 거래 또한 매우 활발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 상황에서 깊이 사람을 사귀었다고 한다면 일단 다른 패거리들이 노릴 위험성이 상당히 커진다. 그렇기에, 코쥬로는 사람을 깊이 사귀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예외였다. 그녀의 집안 또한 나쁜 편은 아니었고, 그 집안은 그녀를 그러한 위험에서 지켜줄 든든한 보호기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아서, 이따금 느껴지는 낯선 시선에 코쥬로는 예민했다. 특히 그것이 ‘매주’, ‘같은 장소’에서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가방을 뒤지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닥 들어 있는 건 없다. 가방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물건이 없었다. 일단 그 사람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건 핸드폰과 지갑. 핸드폰은 이미 뒤져보았으니 지갑을 열어 뒤져본다. 주민등록증이 있기에 꺼내보았다. 금년으로 열아홉이 되는 나이이고, 이름이 다테 마사무…네… 인가….
그래, 다테 마사무네. 다시 한 번 더 이름을 중얼거려 보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기시감이 사라져 코쥬로는 다시 주민등록증을 훑어보았다. 발급받은 지 얼마 안 된 듯, 주민등록증에는 흠집도 거의 나 있지 않았다. 그 외에는 버스카드, 통장카드 정도.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 지갑 안에서는 구깃구깃 구겨진 영수증과 돈이 섞여서 엉망이었다. 잠시 얼굴을 찌뿌리고 지갑을 닫았다. 그 외는 다이어리…라기보단 수첩에 가깝지만. 뭔가 금액이 이리저리 빼고 더하고 되어있는 걸로 보아 낙서장 대용으로도 쓰고 있는가보다. 중간 부분에는 그닥 볼 게 없어 맨 앞페이지를 열어보니 사인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보였다.
ㅇㅇ산 , 698 번 버스 타고 --납골당에서. 2-3-4번.
ㅇ월 ㅇㅇ일.
관리비 5만원.
“….”
뭔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분이라, 수첩을 덮어 다시 가방에 밀어넣고 나머지 것들을 뒤졌다. 나오는 거라곤 이상한 약통 하나와 물병 하나 뿐이었다. 설마 약 하는 녀석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진통제였다. 이거 좀 강한 진통제인데. 반쯤 비운 물병과 얼마 약도 들어있지 않은 진통제를 보자니 기분이 묘해진다. 방금 전에 들은 의사의 말이 기억났다.
- 옛날에 눈에 상처가 나서 실명한 모양인데, 그 상태로 너무 내버려뒀습니다. 저래서는 안구가 상해요. 빨리 곪은 안구를 들어내야 하는데, 들어내지 않고 있으니까 고름이 시신경을 마비시키고 뇌에 큰 통증을 주는 겁니다. 저런 애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예요. 기절만 하면 다행입니다만, 길 가다 쓰러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잘못하면 뇌진탕도 올 수 있고요. 빨리 수술이 필요한데, 혹시 보호자 되십니까?
-죄송합니다만, 길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것 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일단 그럼 저 아이에게는 그렇게 전해주세요. 위험하다고요.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그러나, 관계없다. 코쥬로는 거기까지 생각을 끊고 가방을 정리해 놓아두었다. 확실한 건, 다른 조직에서 보낸 녀석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깨고 나면 병원비 청구하고 집으로 보내면 될 일이다. 일요일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불을 덮어주고 에어컨 켜두고 나왔다. 깨면 알아서 나가겠지. 코쥬로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했다. 내내 자지 못했으니, 잠시 눈이라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
마사무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다. 처음에는 집인 줄 알고, 좀 더 자려고 누웠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눈을 떠보니 천장이 낯설다. 이불도 집에 있는 건 이렇게 보송보송하지 않은데…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보니 공간 자체가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시원해서 오랜만에 푹 잤는데, 어쩐지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오오, 시원하다. 에어컨 앞에서 한창 얼쩡거리다가 좀 추워서 조금씩 떨어져 있다가 문손잡이에 등이 부딪쳤다. 제법 아프다.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와보니 정말로 낯설다. 이런 큰 거실 갖고 있는 사람을 알 리가 있냐. 그럼 이건 꿈인가? 그래, 인셉션인가? 그 영화는 꿈이 진짜 같다잖아. 꿈이라도 좋네. 눈을 비비면서 하품을 했다. 역시 시원하니 잠이 잘 온다… 안 그래도 요즘 열대야라 잠도 못 자고 있는데. 그런 생각으로 마사무네는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드러누웠다. 주인 오면 깨우겠지… 어, 그럼 여긴 꿈이 아닌가… 아 몰라, 시원해서 좋다…….
▼
그리고 코쥬로는 정오쯤 되어 깨서, 마사무네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머리를 짚어 열은 없나 확인하고, 에어컨 온도를 조금 높이고 방에 있는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고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고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그리고 나서야 지금, 자신이-
- 뭔가 익숙하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한 것 같다고 느꼈지만, 착각이겠지. 야근에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깨서 바로 나가지 않은 것은 기묘하게 주의성이 없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둔하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여튼 뭔가를 먹여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들쳐업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도 기묘하게 가벼워, 죄책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던 것을 핑계로 대며, 코쥬로는 냉장고 안의 채소들을 잔뜩 꺼냈다. 그러고 보니 고기를 저번에 좀 사두었는데 입이 하나 늘었으니 이왕 요리할거면 처리하자는 생각으로 고기도 꺼내 해동해 두었다. 제법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전골이나 할까.
부드럽게 몸이 흔들린다. 무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깨우지 마…손을 들어 내치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끈질기다. 깨우지 말라니까… 조금 짜증을 내 보지만 흔들흔들하는 몸은 여전했다. 깨우지 말라고…! 천근만근 같은 눈을 뜨자, 뭔가 따뜻한 것이 얼굴에 와 닿았다. 그 온기에 흠칫하며, 마사무네는 눈을 부비면서 눈 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자신이 깨서 기척을 내자마자 한숨을 쉬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코쥬로-?”
금방이라도 마사무네님- 하고 부르며 웃는 얼굴을 보여줄 것 같다. 그런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남 보듯하는 눈도 아니었다. 마치, 기억을 쫒는 것처럼, 눈의 초점이 약간 흐려져 있었다. 머뭇거리다가 몸을 일으키자, 곧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일어났나?”
한 박자 느린 질문 같았지만 마사무네는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코쥬로는 일어서서 시선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식사라도 하고 가지. 반나절 내내 자서 배도 고플 테니.”
평소보다는 조금 어색한 말투에 행동이었지만, 마사무네는 그러려니 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그새 툭 떨어진다. 어라, 내가 이불을 덮고 잤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빨리 오지 않으면 전골 식는다.’는 말이 들어와, 이불은 적당히 내팽개치고 코쥬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코쥬로 요리실력이야 예나 지금이나 안녕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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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바 게시판을 만들까...
그때쯤 되면 아마 제목도 붙여아 될텐데, 에이 귀찮아 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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