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예쁜 섬이예요!”
츠루히메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물론 바닷가에 있는 섬이 그렇듯이 작고 뭔가 빽빽했으며 닻을 내릴 어떤 곳도 없어 보이는, 왠지모를 난공불락의 성이 연상되는 그런 곳이었지만 츠루히메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혼자서 그 섬에 들어가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츠루히메는 이요코우노군들에 의해 오랫동안 수호받고 지냈다. 최근에 출진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렸고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비밀스러운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했다. 초저녁빛 날개의 사람이라 부르는 (자신만의) 낭군님 또한 마찬가지라서, 그들은 츠루히메가 그를 졸졸 쫒아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 해주었고, 그녀만의 개인 사냥터로 인기척 없는 작은 섬을 하나 내어준 것이다. 최근에는 이리저리 바쁘게 나다니느라 대략 반 년 간 가지 못했는데, 츠루히메의 서운해하는 마음을 알아서인지 측근들이 따로 하루쯤 시간을 내어 준 것이다. 그러니 오랜만에 보는 섬이 예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절대로, 따라오지 말기예요!”
그녀는 혹시나 누군가가 쫒아올까봐 종종걸음쳐 금방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나 있는 길을 따라 가겠지. 처음에 섬을 찾았을 때 몇 갈래로 길을 만들어 놓은지라 이요코우노군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 새벽에 그녀를 섬으로 보내며 저녁 노을이 어렴풋이 사라지면 다시 오기로 약속했으니, 그들은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길을 잃어버렸다. 길을 쓰지 않은 지 반 년이 넘어 덩굴이나 잡초 따위가 다시 길을 덮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깜빡 해버린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숲에 들어온 것은 좋았지만, 언제나 있던 길만을 찾아다닌 그녀는 꿩 두어 마리를 사냥하자마자 어디로 나가야 할 지 몰라 당황했다. 언제나 자신의 배가 선착하던 곳은 분명 이 작은 섬 어딘가일텐데, 작다고 해도 한 번 둘러보려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섬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에 당혹해했다.
“정말… 이러고 있으면 다른 분들이 걱정할 텐데….”
들고 있던 활을 바닥에 툭툭 내려꽂아보지만, 칡덤불이 잔뜩 우거진 곳은 있었을 길의 흔적마저 모두 덮어버리고 없었다. 화살도 몇 개 남지 않았고, 들고온 점심도 금방 먹어버렸고, 잡은 짐승들을 굽기에 츠루히메는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이요코우노우군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라고 생각했을 때, 무심결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바스락, 부스럭,
들짐승? 이런 섬에 들짐승이 사나? 싶었지만 곧 활에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정확히 바스락거리는 지점을 노리고 있자니, 소리가 더 뚜렷이 들린다. 사람 소리… 츠루히메는 고민했다. 자신이 놀러오는 섬에 사람이 살았던가? 아니면 혹시… 초저녁빛 날개의 사람? 혹시나 싶어 눈을 빛내면서 빤히 그곳을 바라보자니,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툭 튀어나왔다.
“다, 당신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건가요!”
“어라? 너는…”
상대방도 제법 당황한 모양새였다. 거리는 제법 있었지만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아, 그녀는 익숙한 은발머리와 보랏빛 안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재빠르게 활시위를 당겨 쵸소카베를 겨누었다. 쵸소카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을 설레설레 저으며 소리쳤다.
“어어, 잠깐만! 꼬마 아가씨. 난 싸우러 여기 온 게 아니야!”
쵸소카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익숙한 닻창이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와 바구니였다. 츠루히메는 조금 어리둥절한 눈으로 머뭇거리며 겨누었던 활을 다시 거두었다. 그렇지만 의구심은 지울 수 없어, 당긴 활시위를 놓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해적을 싫어했고, 그는 해적 두령이었으며, 자신이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세토우치 해를 더럽히는 나쁜 해적. 그녀가 생각하는 쵸소카베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 왜 이곳에 있는 건가요!”
“아니… 말해주긴 좀 곤란하고…”
그녀는 여전히 쵸소카베를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꾹 닫더니, 주위를 둘러보곤 대뜸 물었다.
“그러는 꼬마 아가씨는 여기에 무슨 일이지? 이런 섬엔 볼 일도 없을 텐데.”
“사… 상관하지 마세요! 당신이 간섭할 일은 아니니까요!”
저 해적에게만은 절대로, 절대로 놀림받고 싶지 않아! 발끈한 맘에 바락바락 우겨댄 것이지만 그녀의 상태가 결코 좋을 리는 없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그녀는 불안하게 수평선을 툭 건드리는 듯한 모습의 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쵸소카베는 조심스레 수풀을 헤치고 나오더니, 다시 어딘가로 들어갔다. 그녀와는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빙 둘러 위치를 바꾸더니, 손짓하며 말했다.
“따라와. 섬 나가려는 거지?”
“…기, 길을 잃은 건 아니예요!”
발끈해서 자신의 상황을 몽땅 말해버린 걸 인지하지 못한 듯, 바락바락 뭔가를 우겨댄다. 쵸소카베는 그 모습에 어렴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츠루히메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미소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러니까 빨리 따라와. 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같은 가벼움이라던가 호쾌함이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위협의 느낌이 없기 때문에 화살은 다시 통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가자마자, 쵸소카베는 그만큼 물러섰다.
“어, 꼬마아가씨. 거기서 더 오면 안 돼.”
“왜요? 전 무기 없는 사람을 공격하거나 하진 않아요. 해적씨는 나쁜 사람이지만, 무기가 없으니까 공격하진 않을 거예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뒷걸음질치는 모습은 평소의 쵸소카베에게서는 볼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원래 하얀 피부긴 한데 좀 더 하얀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실에 의아해하며 츠루히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를 보았다. 평소의 그답지 않다. 친하진 않지만, 자주 맞부딪치게 되어있는지라 그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면, 아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어오는 얼굴이 있다.
“그게 말이지. 내가 전염병을 앓고 있거든? 그러니까 가까이 오지 마. 혹시나 가까이 오면 옮을지도 모르니까…”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츠루히메는 그와 멀찍이 떨어져 가면서도 이것저것 물었다. 다른 해적분들은 없나요? 쵸소카베는 거치적거리는 나뭇가지를 꺾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전염병인데 굳이 따로 떨어진 이유가 없잖아, 그러면. 츠루히메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혼자 있나요? 쵸소카베는 긴 풀을 꾹 눌러 밟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츠루히메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것을 중얼거렸다. 누가 있겠냐. 있을 거라고 버티는 놈들 쫒아내는 데만 일 주일이 넘게 걸렸는데. 툭. 하고 덤불을 끊어낸다.
“그럼 여기서 얼마나 지낸 거예요?”
“음… 석 달쯤,…컥,”
날짜를 헤아리던 건지 꺾어버린 긴 풀줄기를 손에 감던 그가 순간 허리를 꺾었다. 크허, 쿨럭, 쿨럭, 커헉! 순간 놀란 츠루히메가 허둥지둥 쵸소카베에게 다가갔지만 곧 그가 휘두른 낚싯대에 걸음을 멈추었다. 쿨럭, 오지, 컥, 마! 크헉! 격한 기침은 무언가를 뱉어낸 것과 함께 끝났다. 헐떡거리며 숨을 재차 고르던 쵸소카베는 츠루히메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자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입가를 닦아냈지만 허사였다. 손과 입가에 잔뜩 묻어있는 것은,
피였다.
“-!”
“-미안…한데.”
뭔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가리고 당황해하는 츠루히메를 보고, 쵸소카베는 고개를 저으며 숨을 골랐다. 그런데도 얼굴은 상냥하게 웃는 표정이어서, 그 알 수 없는 어긋남에 츠루히메는 서글픔을 느꼈다.
“이 이상은… 못 데려다 주겠다 …. 서쪽으로 똑바로… 십 분만 걸으면… 나와.”
해는 이제 거의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직전이었다. 츠루히메는 창백한 쵸소카베의 얼굴과, 떨리는 손과, 텅 빈 바구니를 잠시 응시하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서쪽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풀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쵸소카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식은땀에 옷이 흠뻑 젖어버렸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둔중한 통증을 알리는 가슴께를 바라보며 쵸소카베는 한숨을 내쉬었다.
쵸소카베는 섬에 작은 집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다. 그가 얻은 전염병은 어디에서 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핵이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쵸소카베는 맏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곧장 시코쿠에서 뛰쳐나왔다. 부하들이 당황해하며 쫒아왔지만 모두 쫒아버렸다. 아무도 없는 빈 섬에 숨어들었다. 그렇지만 녀석들은 끝끝내 자신을 찾아냈고, 쫒아내려는 자신의 고집에 못 이겨 나가면서 만들어주고 간 것이었다. 울먹이는 녀석들의 얼굴에 떠오른 죄스러움을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지만, 이러면서 혹시나 병이 옮는 건 아닌가 하고 얼마나 걱정했던가. 시코쿠에 병이 퍼졌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어둑어둑해진 섬은 길을 찾지 못할 만큼 컴컴해서 쵸소카베는 츠루히메가 간 곳을 곧장 따라갔다. 어차피 그녀는 떠났을 거고, 배가 나다닐 수 있는 모래사장이 있는 곳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에게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바닷물에 손도 좀 씻어야겠군. 오늘은 잡은 물고기가 없는데 뭘 먹는다지. 버릇처럼 뒷머리를 긁으려다 손바닥이 피투성인 걸 알고는 그만뒀다.
오랜만에 본 인기척이라 반갑긴 했다. 자신과 척을 지고 있는 그녀라 해도, 역시 사람은 보고 싶었는가보지. 그렇지만 다음은 없을텐데, 아쉽네.
그런 자잘한 생각을 하는 동안 바닷가에 다다랐다. 쵸소카베는 손을 씻으려 물가로 가려다가, 순간 밟힌 무언가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깃털 … 이었던가? 크기도 작고 밟았는데도 움직이질 않아, 뭔가 싶어 자세히 바라보았다.
-ありがとう(고마워요)
백사장에 삐뚤빼뚤한 글씨와 함께 놓여 있는 꿩 두 마리에, 그는 그만 푸하핫, 하고 웃어 버렸다. 꼬마 아가씨 센스 끝내주는데? 푸하하하하하하!!!
오랜만의 호쾌한 웃음이었다.
-
며칠이 지났다. 바다는 조용했고, 쵸소카베는 간신히 낚은 물고기 한 마리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 힘도 없고 축축 늘어지는데다 입맛도 없어, 저번에 바닷물에 절여놓은 꿩이나 구워 먹을지, 아니면 물고기를 바로 구워 먹을지에 대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잘 먹어야 낫지 않을까… 근데 억지로 먹으면 또 안 좋으려나. 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없는 쵸소카베는 자신의 병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곧바로 뛰쳐나오지 않고 좀 더 자세히 알아봐둘 걸 하고 후회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날은 저물어만 가는데 쵸소카베는 여전히 입맛이 없었다. 억지로 물고기를 먹어두긴 했지만, 목이 좀 아팠고 피곤했다. 좀 자둘까… 성에서 들고온 자신의 이불을 뒤적여보니, 좀 축축해서 찜찜했다. 잠만 자면 식은땀이 많이 흘렀지만,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쯧, 혀를 차며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시원한 공기가 열린 문과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시원해…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잠은 금방 왔다.
쿨럭, 쿨럭!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지독한 기침이 시작되자마자 눈을 떴는데, 몽롱한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눈도 제대로 떠 지지 않았다. 크헉! 피를 한 번 토해내고 나서야 시야가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시야가 흐릿해졌다 밝아졌다 해서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간신히 들어 올려보니, …가 보였다.
- 누구?!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벽이 등에 닿는 순간, 다시 기침이 튀어나왔다. 커흑! …너…?! 다시 기침이 터졌다. 쿨럭쿨럭,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으려 애썼지만, 이미 한 번 각혈한 몸에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구겨지고 피가 번진 이불을 붙잡은 손은 무언가 거리를 둘 만한 것을 찾고 있었지만, 팔을 드는 것조차 무리였다.
오지…마… 그 말을 끝으로, 쵸소카베의 고개가 이불 속으로 처박혔다. 다시 축 늘어진 몸은 피투성이 이불속에 푹 파묻혔다.
츠루히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 바깥쪽에 서 있었지만 달빛이 비춘 쵸소카베의 방은 처참했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는 이불과 방 안에 감긴 비릿한 혈향에는 죽음의 냄새마저 섞여 있다는 것을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거기다 쵸소카베는 기절하기 전에 오지 말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는 방 안에 들어서서, 쵸소카베의 무거운 몸을 잡아 일으키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작은 몸으로 그를 들기는 정말 무리였다. 낑낑대며 팔을 잡아 끌면서, 츠루히메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해적씨라니까요!”
전염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요코우노군들은 모두 반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픈 사람이 혼자 있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않는가. 그녀의 논리에 의하면 그랬다. 아픈 사람은 간호를 받아야죠!
낑낑대며 데리고 와서 피투성이인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자 엉망이던 꼴이 좀 볼만해졌다. 처음에 쵸소카베를 데려온 무녀를 본 그들은 어리둥절함과 당황이 섞인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어찌 해서 성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별채에 쵸소카베를 둔 뒤에 그 이유를 묻는 이요코우노군들에게 츠루히메는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그게… 아픈데 그냥 성에서 뛰쳐나왔다고… 그렇지만 치료를 해야… 아프면 간호를 받는 게 좋겠지요…? 뺨이 빨개진 채로 뭐라뭐라 이야기하는데, 설명이 굳이 필요없는 행동이긴 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그녀의 행동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성한 무녀가 있는 곳에 전염병 환자를 들인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는 불안감이 조성될 수 있다. (더 큰일인 건 그 무녀가 환자를 들인 주범이라는 거고, 최종 어퍼컷은 그 환자가 시코쿠의 군웅이라는 데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작은 주군이 얼마나 여리고 착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쵸소카베는 확실한 전염병 보균자였으므로 격리시켜야 함이 옳았고, 이요코우노군들은 그녀가 데려온 것에 대해서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았지만 격리에 대해서만큼은 강경했다. 우선적으로 쵸소카베는 인적 없는 작은 별채에 격리되었고, 어느 누구도 쵸소카베가 지내는 곳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고, 식사와 빨래를 담당하는 이 외에는 시녀도 두지 않았다. 쵸소카베의 방에서 나온 옷가지나 이불 따위는 무조건적으로 삶았고, 들어가고 나오는 이들도 모두 몸을 청결하게 해야 했다. 철저한 위생관리와 방치에 가까운 무관심만이 전염병에 걸린 쵸소카베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쵸소카베는 이요코우노군들이 간 뒤 정신을 차렸고, 억지로 데려와서 미안하다는 츠루히메의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갑작스런 간섭을 받아들였고, 격리조치된다는 말에도 덤덤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그 섬과 똑같은 위치에 두어 미안하다고 츠루히메는 사과했지만, 쵸소카베는 오히려 자신에게 신경써주어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또 웃는데, 츠루히메는 왠지 그 웃음이 저번 섬에서 본 것보다 더 옛날을 닮은 것 같아 조금 안도했다.
다행히 병은 조금씩 나아갔다. 츠루히메의 영험함이 통했는지, 아니면 섬에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이 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쵸소카베가 각혈이나 기침을 하는 횟수가 많이 줄었고, 얼굴에도 혈색이 제법 돌았다.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은 남기는 음식물이 점점 줄어가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츠루히메는 틈만 나면 쵸소카베의 거처를 들러 이것저것 묻고 말을 걸고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병 옮는다며 경악하던 그는 점차 그녀가 다가오는 것에 익숙해졌고, 근처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가끔 병 옮는다구, 가끔만 와도 괜찮아. 라는 투덜거림 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츠루히메는 뭔가 기뻐졌다. 옛날의 그로 돌아오는 것만 같아서였다.
“식사는 했어요?”
“아아, 전복죽이던데 비싼 거 아냐?”
“바닷가인걸요. 약은요?”
“방금 먹었어… 근데 그거 너무 떫은 맛 난다고….”
“약 맛은 나도 모르니까, 내일 의원님한테 물어보세요. 아, 의원님은 뭐래요?”
“몸이 점점 낫는다던데,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어이어이, 그렇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옮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내일부터 놀러올 땐 술 싸와. 라고 덧붙인다. 거기에 버럭버럭 화를 내는 츠루히메의 모습도 이제는 일상이었다.
불만이 쌓여가는 것은 이요코우노군들이었다. 그들은 츠루히메와 쵸소카베가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는 것에 극구 반대했다. 그러면서 쵸소카베에게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아졌고, 츠루히메에게도 제법 엄격해졌다. 어느 날인가, 쵸소카베가 뒤뜰에서 주운 나무토막을 재주 좋게 깎아서 츠루히메의 조각을 한 적이 있었다. 츠루히메는 그것을 보곤 매우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렇지만 측근들의 반대로 인해 자기 방에 놓아두지도 못하고 그의 방에 그대로 놓아두고 보기만 해야 했다. 건드리면 병이 옮는다는 측근들의 반대에 부딪친 탓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매우 미안해했지만, 쵸소카베는 오히려 손에 힘이 없어 제대로 못 깎은 것이라며, 다음에 더 예쁘게 깎아줄 테니 너무 서운해 말라고 달랬다.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상황이라면 결코 느끼지 못할 것들이었다. 그녀는 늘상 그를 적대시해왔고, 그 쪽에서도 그것은 매한가지였다. 전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서,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 평화로움은 둘의 몸에 버릇처럼 붙어있던 긴장을 풀게 했고, 솔직한 대화도 제법 가능하게 했다.
언젠가 츠루히메가 안대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딴에는 뭔가 굉장한 것을 묻듯이, 주먹을 꼭 쥐고 묻는데, 마치 전투 전의 긴장감을 보듯 무거운 공기에 순간 쵸소카베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고는 안대 위를 부드럽게 손으로 쓸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야. 왜, 저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처럼 그렇게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도 없어. 그저 어릴때, 검을 연습하다 찔렸어. 그 뒤론 무서워서 방에 콕 처박혀 있었거든. 그래 꼭 이때처럼…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 걱정해주는 거란 걸 아는데도, 그냥 알지. 그렇게 혼자 있는게 너무 싫어서… 커서는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 우습지, 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은 거야…. 혼자 있는 게… 왜, 힘들잖아, 누구나…. 말 끝이 점점 흐려졌다. 안대를 덮은 손이 어느새 얼굴을 다 덮어버렸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힘겹게 이야기하죠? 츠루히메는 그 물음을 삼켰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쵸소카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아주 어릴 때 몸이 좀 약했어. 거기다 왼눈까지 다쳐서 방에서 나오질 않으니까, 원래 피부도 하얀 편이긴 한데 좀 창백했나봐. 그래서 히메와코라는 별명이 붙더라고.
히메와코?
공주님 같은 아이라는 거지. …거의 밖에도 나오지 않았고,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씩씩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얼굴 흉터가, 왜, 칼에 찔린 자상은 좀 보기 흉하거든. 그래서.
사람을 피하게 되는거지.
쵸소카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상증을 이겨내는 데만 10년이 걸렸던가… 아, 이런 질문과 많이 어긋났네. 술을 마신 것처럼 횡설수설하더니 다시 피식 웃고는 더듬더듬 말을 잇던 쵸소카베가, 문득 츠루히메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네?”
“너는 왜 나를 구했지? 놓고 말하면, 너는 그 때 날 죽였어도 상관없는 상황이었잖아.”
츠루히메는 잠시 시선을 비꼈다. 이미 쵸소카베의 병은 거의 다 나아 있었으니 옮을 걱정은 없다고 의원이 그랬던가.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쵸소카베에게 다가갔다. 그는 버릇처럼 뒤로 조금 물러섰지만, 벽에 등이 닿자 곧 포기한 듯 피식 웃었다. 츠루히메는 그의 안대를 한 번 쓰다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와 닮았거든요.”
그 외로움이. 츠루히메는 외로움을 잘 알았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그녀에게는 천형과 같은 것이었다. 신성한 무녀, 미래를 보는 힘. 숭상받아 마땅한 능력이었으나 개인에게 그 힘은 불행이었다. 그녀는 단지 숭배의 존재로써, 어느 누구와도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이요코우노군은 그녀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며 길러주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동등한 존재가 없다.
단지 순수한, 순백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
그렇기에 당신이 부러웠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터놓고 호쾌하게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정말로 부러웠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외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당신을 보았을 때, 차마 버려두고 갈 수 없었다.
혼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데, 혼자 내버려두는 건 너무 이상해서. 그래서. 그래서. 쵸소카베는 굳이 그 이상의 말을 들으려 하지는 않았다. 단지 천천히 손을 들어, 츠루히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츠루히메.”
늘 꼬마 아가씨, 정도로 부르더니.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놀란 츠루히메가 고개를 들자, 쵸소카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외롭지 않지?”
그 말에,
츠루히메는 그만 울음을 터뜨릴 뻔한 것을 꾹 참고, 쵸소카베를 마주보고 웃어 보였다.
맑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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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엔 나눠서 올렸지만 그냥 전체 죽 올립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페에도 죽 올릴 걸 그랬나요..
쵸소카베를 격하게 괴롭혀주고 싶은 나님은 도S
치카나리로 끄적이는 것도 있지만 과연 올릴지.... 모르겠네요 ㅇ>-<
뭣보다 이제 시험기간입니다! 두둥. 오오.
거기다 친구가 니노미야 카즈나리로 소설 써 달래요 ㅇ>-<
요즘 뭔가 일이 많아서 블로그는 좀 등한시 한 것같지만
덕질관련해서는 꾸준히 올릴까 합니다 ㅋㅋ
음..
적어도 코다테랑 레이어스는 완결내고 싶습니다ㅠㅠ 장편은 무서워요 ㄷㄷㄷ 완결내본 적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