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에메로드가 기둥이 되었을 때, 그 이전의 세계, 그 이전의 세계도 지금처럼 아름다웠을 것인가?
모코나는 침묵하고, 현 '기둥'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의지이고,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그 마음을, 하나로 뭉친 사람이 있다.
임시 '기둥'으로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에메로드의 죽음 이후로도 세계를 버텨낸 사람이지만,
그 스스로가 과거의 인물이라는 것.
그 순수함으로 자라지 못한 마음을 안고
제 일이라며 마음에 세계를 들이고,
자신의 책임이라며 끝을 스스로 정한 남자.
도사, 크레프.
그녀들의 기도에 세상이 공명한다. 강한 의지에 우주가 이끌린다. 이 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강한 의지와 기도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신에 의해 기둥으로 인정받았던 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의 동료가 있다. 아직 서툴어 제 마음이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그저 울기만 하는.
그 여성의 또다른 동료가 있다. 너무나 순수해, 삶마저도 포기해버린.
그녀는 기도한다.
그들의 행복을.
"왜 다들, 그렇게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어..... 남들이 떠나는 것도, 내가 떠나는 것도, 그저 순응해야 할 세계일 뿐인데."
"아닙니다, 도사."
란티스는 크레프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수많은 장식물을 지니고서도 그 하얀 얼굴로 수줍게 웃는 도사는, 그래도 저보다 윗사람이었다. 그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세상에 찌들지 않은, 그 고고한 순결이란.
"도사는 도사로서 이 세상을 살았지요."
크레프로부터 지팡이를 이어받으며 란티스는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다했다.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그 지팡이를 받는다. 하지만, 말은 쉬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그 직책을 내려놓으시고 그저 평범하게 지내시라는 뜻입니다."
"나는 잘 살았네."
"도사, 아니 이제는 아니니, 크레프."
"- 아."
제 이름으로 그에게 불린 것이 낯선지 눈을 둥글게 뜬다. 아름다운 눈동자다.
그 눈동자에 행복이 깃들고, 수많은 감정이 깃들어, 지금보다 좀 더 다채로워지기를 바란다.
"책임을 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대로 하시면 됩니다."
우미에게서 받은 목걸이가 차랑, 하고 다시 울린다.
반짝거리는 아쿠아마린은 마치 그녀의 머리색처럼 아름답다. 이 목걸이는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시원하고, 아름답고, 그녀의 목에서 가장 아름답게 어울릴 것이다.
"아름다운 목걸이로군요. 걸어 드릴까요?"
"아... 내게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도사께도 잘 어울릴 겁니다."
란티스가 손을 들어 그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받았다. 어, 어, 하는 순간 그의 목에 목걸이가 빛난다. 아, 그러고보니. 하는 실없는 소리와 함께 란티스가 크레프의 온몸에 걸쳐져 있는 수많은 마장을 전부 걷었다.
"이것들은, 도사의 직책에선 필요하지만 당신에게는 필요하지 않겠지요."
"란티스, 왜, 다들 이러는가......"
"크레프, 우미가 울고 있습니다."
흠칫, 하는 몸이 안타깝다. 크레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란티스가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녀가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히카루의 소중한 사람. 그리고 당신도 그렇죠."
"나는 울지 않았는데."
"아니, 당신은........ 아닙니다. 다만, - 지금은 제 곁보단 우미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미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네,ㅡ 히카루와 후는, 에메로드가 있었던 '기도의 방'에 있습니다."
깜짝 놀란 크레프의 얼굴은, 너무 앳되어 오히려 어울렸다. 란티스는 울 것 같은 제 표정을 지우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해도, 과연 도사가 제 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크레프, 우미에게 가십시오. 제가 감히, 당신께 충고합니다."
"..... 나는....."
나는 아무에게도 내 끝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특히, 그녀에게는....
다들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왜 다들 슬퍼할까......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아주세요
우리들의 마음이 고요함과 감사로 가득 차서
모든 고뇌를 잊고 무상의 행복에 싸일 때까지
낮에도 밤에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하는 형제로서 인사할 수 있을 때까지
무엇을 하더라도 빛으로 충만하고....
- 헤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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