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히로아카]

[토도바쿠] O Castitatis Lilium

보랏빛구름 2016. 7. 18. 20:40

* 용사*악마AU

* 새벽에 뜬금없이 떠오른 스토리 (중2중2할 확률 높음) 입니다

* 히로아카.... 좋아합니다. 진짜루요. 바쿠고도 토도로키도 진짜 좋아합니다.....

다만 이 글을 보고 난 여러분들은 그 반대를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 캐붕, 캐붕, 캐붕입니다





실은 엘펜리트 오프닝 엄청 좋아했습니다. 오프닝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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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iusti meditabitur sapientiam
의인(義人)의 입은 지혜를 말하느니라
 


악마에게도 꿈은 있다. 아무리 하찮은 것에라도 꿈은 있다. 살고 싶다는, 본능적인 소망에서부터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끝도 없이 쓸모없는 소망까지 다양하다. 소망의 처음은 순수하지만, 끝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증오, 일그러진 욕망, 파괴, 혹은 복수와 좌절, 혐오.... 그 수많은 감정의 결과물로, 나는 태어났다.


악마가 태어나는 순간, 바로 근처에 있던 다른 악마가 그의 생존 혹은 끝을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의 얼굴을 붙들어 터뜨리면서 내 인생의 시작을 고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바쿠고(爆豪)로 불렀고, 나는 어느 순간 다른 악마들에게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마계는 힘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세계다. 강한 자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약한 자가 밑바닥에 깔릴 수밖에 없는. 바쿠고는 거기에서 꽤나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최강의 위치에 서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바쿠고는 꽤나 오만했다. 세상 만사가 제 발 밑에 있다는 오만함은, 그의 눈을 가렸다. 그는 다른 악마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인간계로 나왔다. 새삼스럽지만 잡것들, 그러니까 인간들의 수가 너무 많아,  끝내 수많은 악마들이 죽어나간 곳이기도 했다. 악마들이 말렸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그곳에선 견디지 못했노라고 했다. 세상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고, 그 상성에 인간과 악마는 맞지 않는다고도. 그 모든 말들을 뿌리치고 바쿠고는 인간계로 나왔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런 하찮은 것들 따위에게 지지 않는다, 라는 생각 뿐이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마계는 어디나 흔해빠진 이미지 뿐이다. 먼지와 마족밖에 없는 세상. 그에 반해, 인간계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였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바쿠고는 잠시 넋을 놓았다. 


그저 인간계가 더 재미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들에 섞여 지내다가, 그것이 귀찮아지자 인간계에 제 집을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상한 인간들이 제 집에 찾아왔다. 악마는 죽어라! 라고 외치던 검은 옷의 남자, 물을 뿌리던 이상한 여자, 방울을 흔들던 할머니. 처음에는 귀찮은 인간들이로구나, 하고 내쫓을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물건은 약하건 강하건 바쿠고에게 영향을 미쳤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류의 자잘한 것들이었다. 바쿠고의 힘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게 너무 싫었던 바쿠고는 그렇게 찾아온 인간들을 몰래몰래 죽여 없앴다. 시체야 마계로 던져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사건이 너무 커져, 인간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 찾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바쿠고는 그 때까지만해도, 인간계에 꽤나 흥미를 갖고 있었다.  인간계의 음식은 맛있었고, 풍경은 흡족했으며, 가지고 놀기에도 알맞았다. 아무렇지 않은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바쿠고는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계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아, 이래저래 구경하는 데 재미가 붙어 있었다. 관리하는 인간은 얼굴을 잘 비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인간들이 좋아하는 돈이란 것을 잔뜩 주니까. 장미라는 꽃을 들어 가운데만 터뜨리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이 꽤나 운치가 있어 그 느낌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기운이 집안으로 침범하는 걸 느꼈다.


짜증이 났다. 인간들은 왜 계속 찾아오는 걸까. 무장은 필요 없겠지 싶어 빈몸으로 홀로 나섰다. 한 남자가 홀로, 그 곳에 서 있었다. 갑옷도, 머리도, 피부색마저도 온통 하얀 색깔이라 이 새끼들은 코스튬 센스가 전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개를 돌리자 반대쪽은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버릇처럼 말이 나갔다.


"뭐냐, 반쪽이."

"네가, 마왕인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 뭐야 이 새끼!


"그래, 넌 뭔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고 지랄이냐?"

"나는...... 마왕을 처치하라고 해서."

"하, 웃기고 있네. 너 따위가?"

"아마도.... 가능하니까 여기 오지 않았을까?"


미묘하게 흐린 대답에 먼저 짜증이 난 건 바쿠고였다. 이 새끼 뭐야! 짜증스레 손을 뻗었다. 그냥 죽이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녀석의 발 밑에 바로 폭발을 일으켰다. 덤벼온 엔간한 인간들은 이 방법으로도 간단히 처리되곤 했다. 별 것 아닌 놈이었나, 하고 손을 까닥이고 있는데, 녀석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에, 뭐냐, 반쪽이. 좀 하네?"


바쿠고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도 폭발에 상처입지 않은 녀석은 별로 없었는데. 낄낄 웃으며 천천히 전투 태세를 취한다. 여전히 상대는 뚱한 표정이었다. 마치, 억지로 여기에 쫒겨 온 듯한 느낌. 손을 천천히 들어, 내게 뻗는다. 그 순간, 땅이 얼어붙었다. 피할 시간도 주지 않고서, 발이 얼어붙었다. 바쿠고의 표정도 함께 얼어붙었다. 만만한 인간은 아니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을 깨뜨린다. 입김이 나왔다. 서늘한 한기에 바쿠고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죽여 버린다!!!!"











Et lingua eius loquetur indicium
그리고 그의 말씀은 심판을 내리시니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반쪽이 꼬맹이한테 처발렸다.


이 세계에 신성력이라는 힘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고, 신성력이라는 힘이 제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저 꼬맹이는 뭐 온 몸의 피가 신성력이라던가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마력이나 에너지 자체로는 붙어볼 만 했지만, 상성 자체가 무지하게 나빴다는 뜻이다. 바쿠고는 이를 으득 갈았다. 이미 제 처분은 제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수군거리는 목소리는 낮게 깔려, 조각난 단어만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 상황을, 바쿠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씨발, 이거 안 풀어!!!!!!"

"시끄러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뜬금없이 얼굴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온몸이 이상한 사슬로 칭칭 감겨 힘이 쭉쭉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목청 하나는 대단해서, 바쿠고는 미친 듯이 발악을 해 댔다. 그 입에 아무 것도 물릴 수 없었던 건 다만 이 특이한 용사의 성격 탓이었다.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아!!! 너희들 전부 씹어 먹어버릴 테니까!!!!"

"알았어."

"너도 갈가리 찢어, 뭐, 야 이 미친놈아!!!"

"그래."


그 이후로도 한참을 소리지르던 바쿠고는 그 기력을 다해, 끝내는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용사는 쭈그려 앉아서 바쿠고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쿠고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잠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용사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바쿠고의 식식거리던 숨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자 조심스레 입을 뗐다.


"네가 살던 곳에는, 너 같은 마왕이 많아?"

"......"

"다른 마왕은 없어?"

"........"

"너보다 좀 더 강한...."

"아 시발, 닥치라고!!!"

"그런 마왕은 없어?"

"씨발 마계 마왕이 일이 퍽이나 없어서 여기에 나오고 지랄하겠다! 난 마왕이라고 한 적도 없거든!? 걍 마족이라고 등신들아!"


바쿠고의 분노가 폭발했다. 


"아.... 그렇구나."


그 분노에 대한 용사의 반응이란 너무 심플해서, 당황할 정도였다. 바쿠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인간들 중, 이렇게 무던한 인간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라거나 결국 넌 쓰레기였군, 따위의 빈정거림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 진짜 뭐냐?"


바쿠고는 이를 악물었다. 용사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붉은 머리카락이 치워지자, 전투에선 보이지 않았던 흉터가 그제야 들어왔다. 눈동자는 하늘빛을 띄었다. 생김새부터 이미 이상한 인간이었다. 


아니 실은 꽤나 내 취향............


"토도로키 쇼토."

"앙?"

"..... 이름을 물어본 것 아니었나?"

"하-?"


말을 정정하자, 어마무지한 멍청이다.








하여간에 저 멍청이는 심심할 때마다 내게로 왔다. 그 이후로는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와서 내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소멸시키지 않을까. 바쿠고는 그 말을 깊이 듣지 않았다. 어차피 붙잡힐 때부터 죽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그런데,ㅡ 너는 여기에 왜 왔어?"

"....."

"여긴 인간계잖아. 마족들은 인간계에 잘 오지 않던데....."

"니가 용사 따위가 된 거랑 똑같은 이유겠지."


실없는 질문에 알맞은, 실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용사는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제 손을 붙들었다. 손도 덜덜 떨리고 있어서, 바쿠고는 자신의 팔에 감각이 마비된 것인지 잠시 딴생각에 빠질 뻔 했다.


 너도.... 그래?.... 너도?


그 중얼거림을 들으며 바쿠고가 속으로 웃었다. 


그래. 








Beatus vir qui suffert tentationem
유혹에 견뎌내는 자 복이 있느니라.
 









바쿠고는 그 이후로 용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하지 않는 힘, 강제로 받은 수련, 어머니의 거부. 과거는 온통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듣기에도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별 표정 없이 토도로키는 그랬어. 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끝맺곤 했다. 그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바쿠고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들을 죽여버리고 싶진 않아?"

"왜?"

"널 괴롭혔잖아."

"..... 하지만, 엄마가 또 우는 건 보고싶지 않은걸."

"찌질한 새끼..."


토도로키가 고개를 숙였다. 손을 만지작거린다. 바쿠고가 토도로키와 눈을 맞추려 애썼다. 토도로키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왕은 얼마나 강해....?"

"멍청아. 마왕 근처에 가면 우리도 뒈져. 뒈지고 싶냐?"


그 말에도 토도로키는 입술을 꽉 깨물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진짜 뒈지고 싶냐?"

".........."

"하,"


바쿠고가 웃었다. 이 미친 놈. 그래서 네가 온 거였냐. 죽으러 온 거였어. 하지만 내가 너무 약했던 거지. 시발!!! 그 소리에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바쿠고가 실성한 것 마냥 낄낄 웃었다. 그래, 죽고 싶었구나.


"이거 풀어."

"왜?"

"마왕에게 데려다 줄 테니까."

"....."

"마왕은 인간계 따위로 안 와. 그 새끼는 존나 게으르거든. 대신 널 마왕에게 데려다 줄 순 있어. 거기서 뒈지던가."


바쿠고가 흉진 피부 속에서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토도로키는 멍하니 그 얼굴에 손을 들었다. 토도로키의 피부도 남 못지 않게 하얀 편이었지만, 바쿠고와 비교해 보면 어두운 색이었다. 그 색 차이를 토도로키는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상하지, 너는 악마인데."

"뭐 임마."

".....너는 참 예뻐."

"뭐, 뭐, 뭐, 이 미친-"

"그래서 네 말은 믿고 싶어져."


토도로키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선 자리를 떴다. 뒤에 덩그러니 남은 바쿠고는 제 분을 견디지 못하고 욕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저 또라이 같은 게, 뭐라는거야!?




예쁘다니, 그런 단어는 나보다는 네가 더 - 










Quoniqm cum 
시험을 이겨낼 때 



 





토도로키는 그 말을 하고 이틀 뒤, 바쿠고를 찾아와 손을 뻗었다. 사슬은 쉽게 사라졌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바쿠고를 바라보며, 토도로키가 말했다. 


"죽으러 갈래."


바쿠고가 웃었다. 미친 놈일세 이거.


"네가 같이 가 주면 좋겠어."

"나까지 뒈지라고?"

"아냐, 그럼 안 되는데."

"뭐야 등신이."

"...... 그냥, 너랑 같이 좀 더 있고 싶었어. 너 내일 죽는다고 하길래."


그 쓸데없이 순진한 말에 바쿠고는 혀를 찼다. 그리고는 웃어 보였다. 그 자신만만한 웃음에 토도로키도 따라 웃었다. 마족을 믿는 멍청하고 순진한 인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 볼까.


마계에서 숨이라도 붙어 있을 수 있으면,

"- 언제든지."





probates fuerit 

생명의 관을 


accipient coronam vitae

받을 것이다.







바쿠고의 말대로, 마계는 인간에게 그리 친절한 지역이 아니었다. 토도로키는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을 하고서는 바쿠고의 손을 붙들었다. 여기는 바쿠고의 세계이다. 인간이 인간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듯이, 바쿠고는 마계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낄낄거리며 바쿠고가 손을 들었다. 


"이 세계의 끝에 마왕이 있어. 진짜 가려고?"


토도로키는 멍하니 그 손끝과 바쿠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바쿠고는 이 세계에서라면 쉽사리 토도로키를 찢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 자신의 뭉개진 자존심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인간계에선 필요에 의해 숨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곤 눈을 깜빡이는 용사를 안아들었다.


"그럼 간다. 가다 뒈지는 건 내 탓 아니다."


토도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는, 인간이었다. 어쨌든, 마계와는 맞지 않다는 소리다. 상성으로 따지자면 이쪽이 더 최악이다. 인간계는 마족에게 별다른 위협을 주지 않지만, 마계의 공기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니까. 아마 지금도 폐가 좀 아플 것이다.


"고마워."

"..... 뭔 말만 하면 지랄같은 단어만 내뱉냐, 너는."

"그런가...."


 토도로키는 마왕성 바로 앞에 섰다. 마왕성은 성이 아니라 작은 저택 같은 이미지였다. 다만, 그 저택에서 내뿜는 어마어마한 마기가, 여기가 마왕성임을 알려 줄 뿐이었다. 토도로키가 두 발을 딛자, 바쿠고는 곧 뒤로 물러섰다.


"잘 해보던가. 용, 사, 님?"

"응......"



토도로키는 바쿠고가 떠나는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금발머리는 검은 날개가 두세번 날개짓을 하자 금방 사라져 버렸다. 눈 앞에는 거대한 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토도로키가 고개를 갸웃하고 안으로 좀 더 들어서자, 문이 절로 닫힌다. 힘을 써 방을 밝혀보지만, 정말로 텅 비어있었다. 2층에 있으려나, 싶어 2층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는데,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다. 거짓말 한 걸까. 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불을 끈 방은 온통 캄캄해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삶처럼. 여기에서 죽어 없어지면 편하려나. 토도로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손잡이인 것을 붙잡고, 앞으로 힘껏 밀었다. 기기-긱. 문이 열리는 소리가 기괴했다. 



"어...?"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바깥은 마계가 아니었다. 토도로키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거대한 동공()같던 집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꽃밭이었다. 꽃밭 사이에 선 채로,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멍하니 주저앉았다. 마계에 가자마자 목에 걸리던 가시 같던 공기가 사라지고, 그저 꽃향기만이 가득했다.


"멍청이가. 진짜로 들어가냐?"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마왕, 아니다. 그는 마왕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냥 악마다. 아니다. 그의 이름은 .....


"너 이름이 뭐야?"

"허-"


바쿠고가 기가 차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저 반쪽이를 만나고 나서 할 말이 떨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손을 뻗어 폭발을 일으킨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며 말했다.


"바쿠고(爆豪)다."

"어울리는 이름이네....."



어,

반쪽이 녀석



웃은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있을래?"


그 순진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순수한 말일 뿐인데도.


"그래, 등신같은 거 내가 없음 바로 등쳐먹힐 거 아니냐."

"고마워."



아 역시 저 얼굴은

꽤나 미인이라고.












O quam sancta
오 (이) 얼마나 성스러운가
 
Quam serena 
얼마나 고요한가
 
Quam benigna
얼마나 자비로운가
 
Quam amoena
얼마나 아름다운가
 
O castitatis lilium
오 순결의 백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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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닥 관심없었던 서로가 점점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는데 전부 똥이 되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토리 생각 안 하고 막 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배드엔딩 샘플이라고 하겠습니다

'순결의 백합'은 처음에는 토도로키를 생각했습니다. 근데 엔딩만 보면 자비롭기 그지없는 바쿠고의 이야기네여....


바쿠고도 토도로키도 서로에게 호의가 있는 건 맞습니다. 토도로키는 대놓고 표현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줄 몰랐고, 바쿠고는 '차마 죽일 수 없었던'것으로 어떻게든 인정했다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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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으러 떠나야겠습니다. 역시 안 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런 흑역사 글을 오ㅐ 올리는 걸까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